지난 8월 2일부터 4일까지, 전 세계 국제앰네스티이하 앰네스티 지부의 회원과 사무처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여 주요 의제에 대해 논의한 국제총회Global Assembly가 태국 방콕에서 열렸습니다. 한국지부에서는 4명의 대표단을 파견하여 주요 의제에 대해 논의하고 의결권을 행사하고 돌아왔는데요, 2박 3일 동안 인권 사안부터 앰네스티의 글로벌 전략까지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다는 후문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펼치는 세계 최대 인권 단체 앰네스티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까요?
누구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될까요?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믿는 개개인이 앰네스티를 움직인다고 하던데, 진짜로 그럴까요?
이런 이상적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하려면 어떤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까요?
평소 앰네스티의 활동에 애정을 갖고 지켜보며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품어왔다면 이번 인터뷰를 유심히 읽어주세요. 한국지부 대표단 중 1인으로 총회에 다녀오신 거버넌스 담당 신연님과 나눈 2024 국제총회 뒷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24 국제총회에 참석한 한국지부 대표단.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거버넌스 담당 박신연입니다.
저도 면접 때 ‘거버넌스 담당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여쭤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의사결정을 하는 모든 과정이 거버넌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범위가 굉장히 넓잖아요. 사무처에서, 이사회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개개인 캠페이너가 결정할 사안도 있고, 결정해야 할 것이 되게 많죠. 그중에서도 앰네스티의 활동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결정은 이사회에서 내려지니까, 앰네스티에서 거버넌스라고 함은 대표적으로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을 일컫는 것이죠. 그리고 이 모든 의사결정의 과정을 다 거친 후 남는 것은 소위 ‘정관’ 등 규정이에요. 이런 규정을 만드는 건 어떤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모든 단체, 기관 등에서 의사결정의 끝판왕은 규정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거기로 가는 과정은 다를 수 있겠죠.
이번 국제총회를 다녀와서 앰네스티가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즉흥적으로 반영되는 의견들도 많았고, 어떤 발언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듣고 반영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지난한 과정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모든 이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성취감이 있었어요. 이게 바로 거버넌스인가? (웃음) 개인적으로도 배우고 성장한 계기였어요. 한국지부도 이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좋은 점들을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제총회는 앰네스티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데요, 전 세계 지부의 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여 앰네스티 인권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주요 정책을 의결하는 연례행사에요.
대표단 구성에는 이사장, 사무처장, 유스 대표가 반드시 포함돼요. 대표단이 대표하는 각 지부는 각 1표의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Standing Representative’라고 불리는 대표(일반적으로는 이사장)가 의사결정권을 행사해요.
유스 대표가 필수로 참석해야 한다는 사항은 이번 총회에서 통과되었어요. 이것 때문에 정관도 바뀌었고요, 가장 중요한 안건 중 하나였어요.
이 안건은 올해 처음 나온 건 아니고, 이전 국제총회에서도 유스 대표의 필요성, 그리고 유스 대표의 총회 참석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 논의되어 왔어요. 아무래도 대표단이 이사장, 사무처장으로 구성되니까 연령대가 높은 이들이 총회에 주로 참석하게 되는데, 의견의 다양성을 위해, 그리고 유스의 참여율을 더 높이기 위해 결정된 것 같아요.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면 참여율이 달라지잖아요. 쉽게 말해 멍석을 깔아주는 거죠.
유스 대표와도 얘기한 부분이긴 한데, 유스 대표단이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것이 토크니즘*이에요. 그런데 이번 총회에서는 그런 우려를 덜 수 있었어요. 유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고, 유스가 총회를 이끌어가는 듯한 느낌도 있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지부 유스 대표님이 대만지부 유스 대표님과 함께 의견 낸 개정안이 반영된 것이었어요. 적극적 의견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뜻깊게 느껴지죠.
개정안은 언어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앰네스티는 공식 언어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3개인데, 그렇게 되면 영미권이나 유럽권 참여자는 총회에서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하는데 아시아권, 아프리카권 참여자는 아무래도 의견 개진에 언어적 한계가 있죠. 한마디로 비영어권 사람들은 영어까지 잘해야 의견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이 장벽이니, 그 외의 다른 언어도 공식 언어로 추가해달라는 안건을 이번에 낸 것이었어요. 또, AI 통역을 활용해서 실시간으로 다른 언어를 통역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는 없을지 이런 의견을 냈죠.
*토크니즘: 사회적 소수자를 포용하기 위해 형식적이거나 상징적인 노력만 기울이는 관행을 말한다. 특히, 인종차별, 성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대표성이 부족한 집단의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Oxford English Dictionary)

2024 국제총회에 참석한 유스들.
올해의 주요 안건은 루멘Lumen이라고 불리는 제안 사항들이었는데요, 앰네스티의 조직 모델을 거버넌스 및 운영 측면에서 평가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모델로 개선하기 위한 제안이에요. 이번 국제총회에서는 총 30개 정도 되는 루멘의 제안 중 몇 가지가 표결을 통해 통과되었어요.
회원분들께서 아시면 좋을 사안이라면, 앰네스티 전반의 활동 방향 등에 의견을 내고 참여하는 국제 회원international membership과 관련한 사안이 통과가 되었어요. 구체적으로는 20만 명 당 1명이 대표자로서 의결권을 갖고, 대표는 총 4명까지 뽑을 수 있음이 정해졌어요.
또, 국제총회를 온라인으로 참관할 수 있게 하는 안도 통과가 되었어요. 각 지부에서 대표단 10명을 뽑아, 국제총회의 모든 과정을 온라인 생중계로 볼 수 있도록 하게 되었어요.
말씀해 주신 대로 엄청난 조별 과제 같아요. (웃음) 표결할 수 있는 사람은 각 지부당 한 명인데요, 안건에 따라서 찬성이 과반이면 통과, 3분의 2 이상이면 통과 등 안건마다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가 유연하게, 각각 다르게 설정되어 있었어요. 표결은 보통 공개적으로 손을 들어 진행하는데, 현장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비밀투표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되어서 갑자기 투표소를 만들어서 투표하기도 했죠.
반대되는 의견이 나온 경우, 회의가 끝나더라도 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게 되어있어요. 예를 들어 일본 지부와 미국 지부가 의견이 달랐다고 하면, 각 지부의 대표끼리 회의 끝나고 다시 논의해서 개정안을 직접 만들어서 제출하는 식이죠. 제출된 개정안을 검토하는 리비전 그룹revision group이 있어서, 개정안이 바로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이 리비전 그룹에는 총회에 참석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요컨대 계속적인 회의와 즉각적인 의견 반영의 절차가 있는 거예요. 67개국의 대략 200명 정도의 대표단이 참여했는데 안건이 충분히 논의되고 모든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죠.
마지막 날에 진행한 임팩트 세션Human Rights Impact Session에서 인권이 위험에 처한 국가들이 인권 현황을 공유하고, 함께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울림이 있었어요. 수단에서 오신 분께서 내전 발생 등으로 자국에서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공유해주시면서, 자국에서 이런 말을 하면 신변의 위험이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에 대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같이 우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전 세계 지부가 어떻게 하나가 되어서 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순간, 앰네스티에서 일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고 보람있었어요.
국제총회라고 하면 회원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길게는 20~30년 뒤의 앰네스티의 정책까지 결정하는 자리인 만큼 그 중요도는 앰네스티의 어떤 행사보다도 크다고 생각해요. 지난 토요일에는 올해 국제총회에 파견되었던 대표단이 결과보고회를 진행했는데요, 전 세계 앰네스티의 인권 현안과 정책에 대한 작은 관심이라도 있으신 분이라면 이런 자리들을 통해 국제총회를 보시면 그 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억압과 불평등에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공동체들을 리더십의 중심에 두길, 가장 적은 자원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들이 접근하고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사를 개최하길, 권력을 만들고 권력을 잡는 직접행동에 함께 뛰어들길” –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현실문화, 2020
앰네스티의 가장 큰 의사결정 기구에 대해 들으며 인권 옹호 활동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활동을 펼치는 단체의 구성과 운영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앰네스티가 건강하고 민주적으로 오래도록 활동하려면 무엇보다 다양한 회원분들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앰네스티 운영회원AMbers 활동을 통해, 온오프라인에서의 캠페인 참여를 통해, 또 후원을 통해 앰네스티와 함께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 싸워주세요.
인터뷰: 백민하(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