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 인권도 충전합시다”
지난 10월 15일, 국제앰네스티는 주요 전기차 제조업체 13사가 공개한 인권 실사 정책과 관행을 국제기준에 맞춰 종합적으로 평가한 새로운 보고서인 “권리를 충전하라(Recharge for Rights): 주요 전기차 제조업체의 인권 실사 평가”(이하 보고서)를 오늘(15일) 발표했다.
이후 10월 31일 기업 및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변화 촉구를 위한 어드보카시 활동을 위해 국제앰네스티 퀸 레 트랜 국제앰네스티 조사관(왼쪽)과 타라 스커 국제앰네스티 기업 인권 캠페이너가 한국을 방문하여 현대자동차의 인권실사 정책 재정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고, 시사IN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10월23일 ‘트럼프가 전기차 혁명에 브레이크를 밟을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기후위기 정책에 반대하며 전기차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국내에서는 잇따르는 화재로 전기차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탄소배출, 대기오염, 소음, 유지비가 적은 전기차 산업에 대한 전망은 세계적으로 밝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4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약 1400만 대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량은 2018년 2%에 불과했으나 2022년 14%, 2023년 18%로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비야디(BYD)와 미국의 테슬라가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35%를 차지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한국의 현대차그룹(현대차)도 약진하는 중이다. 2024년 1분기에는 비야디, 테슬라, BMW에 이어 세계 전기차 판매 4위(점유율 3.4%)를 기록했다.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다. 화석연료의 폭발력으로 움직이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전기차는 대용량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로 모터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IEA는 전기차 배터리용 광물질에 대한 수요가 2024년에서 2050년 사이에 약 9배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배터리 공급망 정보제공 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enchmark Mineral Intelligence)’는 2035년까지 세계적으로 광산 약 350개 이상이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코발트, 리튬, 구리 등 배터리에 쓰이는 물질들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환경파괴, 강제퇴거, 위험한 노동, 원주민 권리 침해 등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배터리 수요가 대폭 늘어나는 가운데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순위를 하나 보자. 메르세데스 벤츠 1위, 테슬라 2위, 스텔란티스 3위··· 한국의 현대차는 11위, 중국의 비야디가 13위로 꼴찌다. 무슨 순위일까. 국제앰네스티가 최근 발간한 ‘권리를 충전하라: 글로벌 전기차 기업의 인권 실사 보고 평가’ 보고서에서 전 세계 13개 자동차 기업을 대상으로 인권 정책을 평가한 결과다(〈그림〉 참조).
세계 1위 규모 전기차 기업 비야디는 총점 90점 중 11점을 받으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번 평가에서 비야디는 대다수 항목에서 국제기준에 전혀 또는 거의 부합하지 않았다. 비야디는 자사의 배터리용 광물 공급망 정보, 광물 조달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각각 11위와 12위로 평가된 현대차와 미쓰비시는 비야디와 마찬가지로 관련 정보를 전혀 또는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비야디, 현대차, 미쓰비시는 국제앰네스티가 각 기업에 송부한 조사 결과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기업이기도 하다. 나머지 10개 기업은 모두 답변을 보내왔다.
이번 보고서는 2024년 8월 기준 각 기업이 공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인권 정책 및 원칙, 공급망 과정에서의 인권 리스크 파악 및 평가, 부정적 영향의 중단·예방·완화 등 6개 분야에서 국제기준(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 등)을 충족했는지 총합해 ‘충분히 증명’ ‘중간 수준으로 증명’ ‘최소한으로 증명’ ‘전혀 증명하지 못함’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하위 5개 기업은 ‘전혀 증명하지 못함’이었고, 1위를 차지한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총점이 51점(90점 만점)에 그쳐 ‘중간 수준으로 증명’에 머물렀다. ‘충분히 증명’은 한 곳도 없었다.
인권 지침 위반하면 순매출 5% 과징금
보고서는 각 기업이 인권 보호에 대한 의무를 실제로 다하고 있는지를 평가하지는 않았다. 공개된 문서 등을 통한 평가이기에, 각 기업이 인권 보호에 대해 어떤 정책과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기초적인 내용’만 파악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막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여기에 이번 보고서의 중요성이 있다. ‘인권 보호 원칙 준수’가 기업 활동의 ‘글로벌 표준’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독일의 비영리단체인 유럽헌법과인권센터(ECCHR)는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 BMW 등 3개 자동차 기업을 독일 연방경제수출통제국(BAFA)에 제소했다. 이들 회사가 중국 상하이자동차와 합작해 신장웨이우얼 지역에 세운 공장의 공급망 안에 위구르족의 강제노동으로 문제가 된 업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였다. 독일이 2023년 1월부터 시행한 ‘공급망 실사법’은 자국 기업은 물론 독일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도 공급망 내 환경과 인권 보호를 의무화했다.
앞으로 3년 뒤에는 더욱 ‘무서운 제도’가 시행된다. 2027년 7월부터 유럽연합(EU)이 적용하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이다. 이 지침이 의미심장한 것은 ‘강력한 구속력’ 때문이다. EU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인권과 환경 지침을 위반할 경우 순매출의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공공부문 참여가 제한되고, 고의 또는 과실로 피해가 발생하면 민사상 책임까지 져야 한다. ‘인권’이 세계 무역의 중요한 잣대로 작동하게 되는 셈이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인권 실사의 현장은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이다. 흔히 ‘콩고민주’라고 부르는 이 나라는 전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절반, 공급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콩고민주에서 ‘크루저(creuseurs, 파는 사람)’라고 불리는 영세 광부는 땅속 깊은 탄광에서 기본적인 도구만을 이용해 직접 광석을 캔다. 광부 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광산에서 버려지는 코발트 원석을 주워 씻은 후 광석만 골라내 판매한다. 어린이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무거운 돌 더미를 옮기고 일당 1~2달러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유니세프(UNICEF)는 2014년 콩고민주 남부에서 어린이 약 4만명이 광산에서 일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4~5월 콩고민주 남부 5개 광산을 방문해 광산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한 적이 있는 사람들 87명(어린이 17명 포함)을 인터뷰했다. 조사 결과 광부 대다수가 장갑, 마스크와 같은 기본적인 보호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코발트가 포함된 먼지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중금속 폐질환(Hard metal lung disease)’이라는 치명적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여성은 “한 번에 50㎏에 달하는 코발트 광석 자루를 옮겨야 했다. 누구나 폐에 문제가 있고, 온몸에 통증이 심하다”라고 앰네스티 조사관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콩고민주공화국 관련 법률은 영세 광부들의 안전장비나 수은을 제외한 인체 유해물질의 관리 방법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콩고민주의 상황은 현재 더욱 악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수요 증가에 따라 더 많은 광산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 발표를 위해 방한한 국제앰네스티 조사관과 캠페이너는 〈시사IN〉과 인터뷰에서 “현재 콩고민주에서 광산 개발을 위한 대규모 강제퇴거가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0월30일 ‘한국 기업의 인권 실사 의무화’ 법안 제안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가 기업의 글로벌 운영 및 원자재 공급망을 포함한 인권 및 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신속하게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현대자동차는 국제앰네스티와의 면담에서 “보고서에서 지적된 부분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향후 목표하고 있는 인권 실사 방향성을 공유하고 시간이 걸려도 인권 실사를 재정비할 의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 발표 이후 첫 번째 기자회견을 한국의 현대차 앞에서 한 이유는?
현대차가 배터리 공급망에서 좀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전기차 산업에서 글로벌 리더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차의 정책이 국제표준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현대차는 11위에 머물렀는데 어떤 문제가 있나?
코발트 채굴에 한정했을 때는 인권 정책이 잘되어 있는 편이었지만, 구리·니켈·리튬 등 다른 공급망에 대한 안전 체계는 확보되어 있지 않았다. 채굴 지역 주민과의 소통 정책도 부족했다. 현대차와의 면담에서 현지 여성, 소수자의 의견이 잘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1위를 차지했다
벤츠, BMW, 폭스바겐 등은 코발트 외에도 니켈이나 리튬 등 다른 광물에 대해서도 문서를 통해 인권 위험성과 관련된 내용을 적시하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밝혔다. 그러나 독일 기업들 역시 광산의 위치, 제련소에 대한 정보 등을 정확히 제공하지 않았기에 총점 기준으로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최근 콩고민주 광산 지역의 노동·인권 환경은 어떤가?
지난 9월 콩고민주를 방문했는데, 주요 광산 지역에서 대규모 강제퇴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콜웨지 지역의 경우 수천 명이 쫓겨났다. 주민을 내쫓기 위해 군인들이 불을 질러 심각한 화상 피해를 입는 일도 과거에 있었다. 한 지역에서는 중국과 캐나다의 기업이 합작으로 광산 개발을 하고 있는데, 퇴거 조치 자체는 적법했지만 그 이후 주민들이 수도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주택에서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콩고민주 정부의 입장은 어떤가.
(광물 자원을 둘러싼) 무력충돌과 정치적 혼란으로 정부 담당자와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 채널을 통해 인권 문제에 대한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자재 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무리하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한국의 경우 많은 부품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어서 공급망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를 포함해 대다수 기업은 공급망의 투명성을 높이고 인권 리스크를 줄이는 일을 ‘더 잘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CSDDD 등) 앞으로 시행될 공급망 인권 실사가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원본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