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섬, 아시아의 마지막 비경,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BTS 화보 촬영지로도 유명한 필리핀 최서단의 섬, 팔라완(Palawan)이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니켈 채굴 증가로 인해 이곳의 토착민과 지역사회가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1월 9일 보고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필리핀 니켈 붐의 인권 악영향’을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니켈 채굴은 잠발레스(Zambales)주와 팔라완주에서 산림 파괴, 중금속 오염, 건강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와의 적절한 협의 및 토착민 동의를 제대로 얻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채굴된 니켈은 주요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공급망에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사는 2023년 9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잠발레스 산타크루즈 해안 지역과 팔라완 섬의 브룩스 포인트 두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90명의 지역 주민 인터뷰, 문서 검토, 사진 자료 등을 바탕으로 니켈 채굴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필리핀 주요 광산 분포.

필리핀산 니켈의 주요 수출국은 중국, 일본, 한국 순이다. 수출된 니켈은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전기차 배터리 등으로 가공된다.
*지도는 국경과 관할 지역의 일반적인 위치를 나타내며 분쟁 지역에 대한 국제앰네스티의 견해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니켈 ‘붐’, 대가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로
니켈은 동전부터 주방용 팬, 제트 엔진, 전기차 배터리까지 다양한 산업에 사용된다. 특히 전기차를 비롯해 신기술 투자가 가속하면서 니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광물의 수요는 2024년부터 2050년 사이에 약 9배로 증가할 전망이다.
필리핀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 2위의 니켈 생산국이다. 2023년 기준 필리핀 34개의 광산에서 3514만 톤(dmt, 건조중량기준)의 니켈 광석이 생산됐다. 주요 채굴지인 잠발레스와 팔라완에서는 현재 총 7개의 기업이 채굴을 진행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다. 2026년까지 최대 190개의 신규 광산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니켈 광산이 신규 광산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세계가 에너지 전환 광물 확보 경쟁을 벌이는 사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이들은 토착민과 지역 주민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니켈 채굴은 토착민과 지역 주민의 건강하고 깨끗한 환경에 접근할 권리, 알 권리,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리, 정의와 효과적 구제책에 접근할 권리 등 수많은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건강권 침해
니켈 채굴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주민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산타 크루즈 지역 인터뷰 참여자 14명 전원은 니켈 채굴이 시작된 이후 천식, 기침, 호흡 곤란 등 호흡기 질환, 안구, 기관지, 피부 염증 등 건강 문제를 경험했다고 증언했다. 브룩스 포인트에서도 호흡기 질환과 피부 질환이 늘어났으며, 특히 어린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고했다.
지역 주민들은 니켈 광석을 운반하는 트럭이 채굴지에서 항구로 이동하는 도로에서 발생시키는 먼지와 관련하여 건강상 우려가 많다고 보고했다. 산타 크루즈 지역 주민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 아를린(Arelene)은 “자녀 셋이 모두 천식을 앓고 있다. 먼지가 집에 들어오면 기침이 끊이질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필란 니켈(Ipilan Nickel Corporation; INC) 운영 광산의 니켈 운반 도로와 해당 기업의 야적장은 팔라완 토착민이 대대로 사용해온 토지와 수자원 근처에 위치해 있다.

산타크루즈에서 니켈 채굴로 인해 벌채된 지역을 보여주는 위성 사진. 니켈 채굴지가 거주지 근처에 위치해 있다. 2024년 2월 19일 촬영.
생계 위협
니켈 채굴은 환경과 지역 주민의 생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여러 담수원이 ‘적갈색’으로 변하는 등 수질이 악화하어 어민들의 생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산타 크루즈의 어민 살바도르 코르테즈(Salvador Cortez)는 “어획량이 크게 줄어 이전에는 하루 어획량이 7kg이었다면 지금은 하루 1~3kg이 고작”이라고 증언했다. 브룩스 포인트의 농부 로날드 콤방(Ronald Combang)은 채굴 이전에는 수확마다 최소 80포대의 쌀을 생산했지만, 이제는 50포대를 채우는 것도 어려워졌다“”고 증언했다.

팔라완 토착민 모하렌 탐빌링(Moharen Tambiling)은 니켈 채굴이 시작된 이후 바닷가재 양식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 결여
잠발레스와 팔라완 주민들은 대부분 니켈 채굴의 영향을 사전에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으며, 충분한 협의 과정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대부분의 경우 환경영향평가서와 같은 문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지역사회가 사업 문서를 명시적으로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당해 사전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일부 주민들은 니켈 채굴에 반대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 협의에서 배제됐다고 증언했다. 참석자들조차 채굴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가 무시당하거나 묵살당했다고 덧붙였다.

니켈 채굴로 삶에 영향을 받은 팔라완 토착민들의 모습.
정부와 기업의 책임
필리핀 국내법과 국제법은 국가로 하여금 지역사회가 채굴 사업에 대해 의미 있는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특히 토착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업의 경우 ‘충분한 사전 정보에 입각한 자유로운 동의(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 FPIC)’를 확보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니켈 채굴의 잠재적 영향을 지역사회에 충분히 알리고, 지역사회의 의견을 경청하고, 우려 사항을 해결하며, 사전 정보에 입각한 자유로운 동의 절차를 적절히 수행하고 결과를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자사의 운영 또는 사업과 관련된 인권 침해를 사전에 식별 및 예방할 책임이 있다.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발견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권실사를 수행할 책임이 있다. 충분한 사전 정보에 입각한 자유로운 동의 절차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기업은 피해를 본 토착민과 협의하여 책임 있는 방식으로 사업에서 철수하고 계획된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
알리샤 캄베이(Alysha Khambay) 국제앰네스티 기업과 인권 조사관은 “필리핀 정부는 인권과 환경 침해에 대한 긴급 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채굴 작업을 중단해야 하며, 니켈 광산 운영자는 광산 운영에 있어 인권 보장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급망 투명성을 높이기 전까지, 전기차 제조사들은 자사의 차량이 필리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 침해와 환경오염과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전기차 제조사는 공급망에 필리핀산 니켈이 포함되어 있는지 조사하고 그 결과와 위험 완화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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