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에는 언제나 작은 우울함이 있었어요. 힘든 일투성이인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려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 세상 모든 울보들, 찌끄레기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요.”
– <우리는 모두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잖아요> 책 소개 카드뉴스 중
인스타그램, 트위터, 메일링 서비스 등 소셜미디어에서 일상을 기록한 그림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 ‘썩어라 수시생‘ 씅팡 작가.
지난달 씅팡 작가는 전기차 제조 공정에 따른 콩고 아동 인권 침해 현실을 전달한 인스타툰 시리즈 연재로 앰네스티와 함께했다. 기후위기와 인권이라는 어려운 내용을 씅팡 작가 특유의 세심하고 공감을 자아내는 연출로 전달해 많은 독자의 긍정적 반응이 이어졌다.
연재가 끝난 뒤 최강 한파가 불어닥친 2월 어느 금요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씅팡 작가와 만나 연재 후기부터 일상 속 기후위기를 느끼는 순간들, 세상의 혐오에 대처하는 자세까지, 평소 작가의 진지한 생각을 엿보고 왔다. 추운 날씨가 무색하게 따뜻함과 부드러운 힘을 얻고 왔던 이날 인터뷰를 전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앰네스티): 안녕하세요, 작가님! 먼저 앰네스티 지지자분들께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씅팡 작가(이하 씅팡): 안녕하세요,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썩어라 수시생’이라는 만화를 그리고 있는 작가 씅팡이라고 합니다.
앰네스티: 썩어라 수시생이라는 이름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이름의 뜻을 소개해 주세요.
씅팡: 고등학교 때 입시를 하면서 입시의 슬픔과 어려움, 스트레스에 대한 만화를 그렸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제는 썩어라 수시생 타이틀이 붙게 된 계기에서 입시 스트레스도 수시생이라는 신분이랑도 관계가 멀어졌네요.
앰네스티: 이번에 <전기차 배터리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인스타툰 시리즈 연재로 앰네스티와 함께해주셨어요. 작업하시게 된 계기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씅팡: 앰네스티라는 단체는 전부터 많이 들어봤어요. 앰네스티로부터 제안을 받고 주변 분들한테 말씀드렸는데 저희 아빠가 특히 되게 좋아하셨어요. (웃음)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유지연 캠페이너께서 전기차 배터리의 인권 침해와 관련하여 보내주신 자료를 봤을 때 너무 놀라기도 했고요. 전기차 수요와 투자는 느는데 정작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광물 채굴지에 사는 분들은 건강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사실이 대조적이어서 충격이었어요. 지식과 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격차가 너무 큰 현실을 잘 설명해 주셔서 제가 그림으로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앰네스티: 인스타툰을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인스타툰이 어떤 내용인지 간략히 소개 및 영업(!)을 부탁드립니다.
씅팡: (비장하게) 그거는 말이죠. 전기차가 환경을 위해 점차 대세가 되고 있지만, 전기차 생산 과정의 어두운 면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내용이에요. 특히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고, 이를 소비자인 우리가 지켜봐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책임감 있는 소비자가 되고 싶다면 만화를 읽어보세요!
앰네스티: 이번 작업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씅팡: 만화에는 못 그렸는데, 현대자동차처럼 전기차 기업뿐만 아니라 애플, 삼성 등 전자기업도 자사의 제품에 사용하는 광물이 아동노동 착취로 채굴된 것인지 확인도 안 하고 스마트폰 등 제품을 생산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만화 작업 하기 전에는 생각도 못 해본 부분이었어요. ‘미리 알았으면 전자기기를 살 때 좀 생각을 하고 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또, 환경을 위해 전기차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소비를 신중하게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큰 글로벌 기업들의 잘못도 벌어지고 있지만, 앰네스티 같은 단체가 팽팽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앰네스티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내가 관심 있게 살펴보니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앰네스티: 저희가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앰네스티: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씅팡: 마지막 회쯤에 어떤 분께서 콩고에서 일어나는 아동 노동 실태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달아주셨던 댓글이 기억에 남아요. 다른 분께서 답글로 내전과 그로 인해 아동이 노동착취와 성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제 만화를 통해 누군가가 세상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기뻤어요.
앰네스티: 기후위기를 인권 침해라 하는 것은 비약이 아닌지 질문 주셨던 댓글도 인상 깊었어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씅팡: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자신이 체감되는 인권 침해가 없다면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뉴스만 봐도 폭설이나 태풍 피해로 정말로 사람들이 죽고 있잖아요. 영화 <기생충>을 보면 폭우가 와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임시 대피소에 가고, 부자들은 집에서 편히 쉬고요. 기후위기를 인권 침해 문제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을 더 극단으로 모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앰네스티: 작가님에 대해서도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최근 성악 공부를 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타지 생활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씅팡: 재미는 있었지만 그렇게 잘 맞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의 힘듦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힘듦을 겪었거든요. 그래도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고, 앞으로도 유럽에서 자리 잡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음악 전공이어서 유럽에 더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궁극적으로 ‘나의 도시’, 저를 환영해 줄 수 있는 도시를 찾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앰네스티: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셨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요, 혹시 조심스럽지만 어떤 순간들에 그렇게 느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씅팡: 저는 퀴어 인권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퀴어가 환영받는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거든요. 물론 열심히 활동해 주시는 단체들이 많지만 아직 당당하게 ‘난 퀴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심이 사회 전반적으로 있는 그 분위기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는데요. 한번은 저희 오빠가 노트북을 사줘서 너무 고마웠다는 내용을 만화로 그려서 올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분들이 그걸 커뮤니티에 무단으로 가져가서 저를 ‘개념녀’라고 부르고, ‘이런 동생이면 사줄 맛 난다’라거나 ‘여자들이 고마운 줄 모르는데 이런 동생 드물다’는 식으로 댓글이 달렸어요. 근데 그렇게 유입되신 분들이 제가 나중에 퀴어 관련해서 만화를 그리니까, ‘야 얘 개념녀 아닌데? pc 페미녀인데?’ 이런 조롱하는 댓글이나 성희롱성 댓글까지 달리더라고요. 온라인상 혐오 발언을 겪으면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감각을 느낀 것 같아요.
앰네스티: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힘듦이 있었다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타지에서 여성으로서, 외국인으로서, 소수자로서 힘이 났던 기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씅팡: 만화로도 그렸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전국적으로 분노를 일으킨 여성 살해 사건이 있었어요. 2023년 11월쯤에 이탈리아에서 한 남성이 이별 통보를 받고 화가 나서 여자친구를 칼로 70번 찔러 살해하고 독일로 도주한 사건이었어요. 2023년 통계에 의하면 그해에만 120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다고 해요. 3일에 한 번 꼴인거죠.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여성 인권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이에 대해서 모두가 분노하는 그 열정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 사건으로 일어난 시위에 참여했던 게 저에게 인상 깊게 남아있어요.
저는 룸메이트랑 룸메이트 친구분들이랑 갔는데, 그분들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볼로냐랑 밀라노에서 기차까지 타고 오셨어요. 그만큼 여성들의 관심이 높았던 시위였죠. 제일 놀랐던 건 되게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였다는 점이었어요. 춤추고, 어린이들도 확성기 들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목마 타고, 정말 축제 같은 분위기로 시위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여성 살해 시위라고 해서 브래지어 불태우고 이런 이미지를 상상했거든요. (웃음) 위험할 줄 알고 머리카락 잡아당길까봐 머리도 숨기고 갔어요.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음악도 나오고 재밌는 분위기였죠.
해가 어둑어둑해지고는 진지한 분위기가 되어서 다 같이 ‘우리는 모두 트랜스페미니스트*다(Siamo tutti transfemministi)’라고 외치면서 행진했어요. 동시에 한국 광화문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며 무리로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죠. 저는 광화문에서 그랬다면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되게 불안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그날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얘기를 해준다는 사실이 안전하고 즐겁고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트랜스페미니즘: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트랜스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초점을 맞추는 페미니즘의 한 분야.
이미지 출처
앰네스티: 인권 침해와 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생각하다보면 가슴이 참 갑갑해지고 더딘 변화에 우울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이런 경험이 있으신지, 이런 마음이 들면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씅팡: 저 혼자 그냥 ‘1인 불매’하는 것 몇 가지가 있어요. (웃음) 제가 이제 돈을 어느 정도 조금 버니까, 돈을 쓰는 거에 있어서도 좀 책임감을 느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불매운동같이 이런 작은 행동이 유난이라고 비난받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실천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앰네스티: 불매운동 외에도 작가님께서 제안하는 일상 속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면요?
씅팡: 글쎄요. 세상을 바꾸고 싶은 분야가 각자 다 다르잖아요. 각자 자신이 조금 더 관심 있는 사회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또 사회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들은 수익 활동이 없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모두가 이들의 활동으로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수익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단체들에 후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앰네스티: 설도 지나고, 이제 정말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되었네요. 올해의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씅팡: 팔로워가 많아져서 제가 하고 싶은 말과 그림을 더 큰 영향력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앰네스티: 2025년, 작가님께서 소망하는 세상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2025년, 씅팡 작가는 ( )한 세상을 소망한다! 에서 괄호 안을 채워본다면요?
씅팡: 2025년, 씅팡 작가는 자유롭게 분노할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한다!
세부적으로는 전국장애인철폐연대에서 되게 오랫동안 투쟁하고 계시잖아요. 장애인도 대중교통 잘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지금 몇 년째 외치고 계시는데, 올해는 잘 해결이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되게 싫어하잖아요. 근데 시위하는 분들을 욕할 게 아니라 이분들이 시위하게 된 이유에 대해 다 같이 관심을 갖고 화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앰네스티: 마지막으로 앰네스티 지지자분들께 한마디 남겨주세요.
씅팡: 우리 함께 열심히 즐겁게 화를 냅시다.
‘한국 광화문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며 무리로 있을 수 있을까?’라는 작가님의 묵직한 물음이, 불안하고 무서울 것 같다는 감각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마음속에 계속 남았다. 내가 수십 년간 살아온 이 도시가 ‘나의 도시’라고 느껴지지 않는 외로움은 어떤 감정일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헤아려보았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행진할 자유나 여유가 없는 이들을 위해 재미있게 투쟁한다고, 그들은 우리의 자유와 안정감을 빼앗을 순 있어도 우리의 재미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말한 이탈리아 친구분의 말에서 복잡한 외로움의 출구를 찾은 기분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광주, 여수, 제주도에서, 한국 방방곡곡 어디서나 재미있게 화낼 수 있도록 광장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앰네스티의 일이 아닐까?
누구나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게, 어디에 있든 이곳이 내 도시라고 느낄 수 있게, 앞으로도 즐겁게 열심히 인권을 말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인터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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