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대표단(1기) x 유스 활동가의 웰빙 워크북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휩쓸리지 않는 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세계 사회정의의 날(World Day of Social Justice)’을 기념하여 유스 활동가의 웰빙을 위한 워크북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휩쓸리지 않는 법』을 출간했습니다. 본 워크북은 국제앰네스티 유스 활동가를 비롯하여 인권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웰빙well-being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한국지부의 유스 대표단이 직접 기획과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워크북 출간 이후, 유스 대표단은 워크북을 함께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나누는 강독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매주 진행된 강독모임을 통해, 유스이자 인권 활동가로서 경험한 차별과 억압을 공유하는 한편, 웰빙과 액티비즘이 공존하는 문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 워크북이 전하는 메시지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강독모임에서 나눈 이야기와 고민들을 공유합니다. 지금 바로 강독모임의 후기를 만나보세요!
1. 웰빙의 뿌리
E. 포용적인 언어
E-1 인칭대명사: 맞출 수도 없고, 맞추려 해서도 안 되는 것!
다들 만나서 반가워요! 제 인칭대명사는 they/them이에요.
영어에선 예를 들어 they/them, she/her, he/him 같은 거요.
젠더 포용적인 대명사gender inclusive pronoun로 쓰여요.
그럼 아까는 왜 기분이 상했던 거예요?
알렉스 님을 he라고 불렀잖아요. He/him을 쓰면 알렉스 님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비가시화하게 되거든요.
특히 채팅방에서는요. 새학기에 열기 좋은 자리예요!
근데 @루나 님 인칭대명사는 아직 못 들었네요…?
안 났는데… @알렉스 님이 물어봐준 덕분에 얘기하게 되네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젠더 포용적인 대명사 gender inclusive pronoun
영어와 같이, 언어 구조상 성별에 따른 인칭대명사를 사용해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필수적인 언어가 존재합니다. 이때,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이 다르거나,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과 다른 인칭대명사로 불릴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이를 미스젠더링misgendering이라고 해요). 이러한 인권침해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언어권에서는 개인의 성 정체성이 배제되지 않는 젠더 표용적인 대명사(they/them 등)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어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정체성이 어떠하든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어요. 젠더 포용적인 대명사를 공유하는 일은 서로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함께 연대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바로 떠오르는 게 있는데, 제가 국제총회를 갔잖아요. 국제총회 전 인적조사에서, 인칭대명사를 물어봤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they/them’을 사용할까 하다가 그냥 제 이름으로 불리길 선호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지역포럼에 다녀온 후에도 설문조사에 참여했는데, 성 정체성에 관해서 정말 자세하게 조사를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걸 보기가 힘들잖아요. 여성/남성까지만 있거나 나머지는 ‘그외’ 이렇게 되는데, 선택지가 엄청 많은 거예요. 그래서 놀라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설문지를 나눠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특정 단체에서 행사를 하면 참가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배지를 데스크에 비치해두더라고요. 원치 않은 사람은 안 가져가도 되고, 원하는 사람들은 더 가져갈 수 있도록 해서 정말 좋았어요.
또,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에게는 상대를 지칭할 때 ‘they/them’이라는 대명사를 쓰는 게 낯설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실수를 한 적도 많았어요. 상대는 ‘they/them’을 쓴다고 했는데, 제가 ‘she/her’이라고 한다든지요.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느껴요. ‘여성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she’겠지”라고 생각을 하기보다는, 상대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우리 여기 있다”라는 걸 알리려고요.
저는 서베이에 참여할 때, ‘그외’라는 선택지가 있으면 꼭 그걸 선택해요. “우리 여기 있다”라는 걸 알리려고요. 그리고 다행인 건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해외를 상대로 한 보고서가 많이 나와서, 그런 부분을 조금은 신경을 쓰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특정 포털 사이트에도 이전에는 성별을 기입할 때 여성 혹은 남성만 선택할 수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근에는 하나가 추가돼서, ‘밝히고 싶지 않음’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걸로 알아요.
저는 초등학생 때는 인칭대명사의 존재를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2016년쯤 캐나다를 갔을 때, 저희 반 친구 2명이 이미 ‘they’라는 인칭대명사를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저희가 편견이나 부정적인 인식 자체가 생겨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보니까, 다들 정말 당연하게 ‘they/them’을 쓰고,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친구는 다 같이 이름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어요.
자신의 인칭대명사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고, 당연하게 친구들이랑 지낼 수 있는 게 정말 좋은 것 같네요.
이메일을 쓸 때, 저희처럼 인권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단 서명란에 자신의 인칭대명사를 적어두잖아요. 어느 날은 인칭대명사를 적어둔 채로 학과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냈는데, 교수님께서 메일을 보시고는 제게 허락을 받고 “우리 강의실에서는 이제 대명사를 사용하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실수로 기입한 거였는데 말이에요. 또, ‘she’로 불리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으면 쪽지를 해줘도 좋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실제로 퀴어 당사자인 친구들이 그 강의를 많이들 수강했던 걸로 알아서, 다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밝히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포용성을 느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요즘은 포용적인 대명사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느껴요. 예컨대, 예전에는 ‘그녀’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이제는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그’라고 하고요.
맞아요.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 딸’, ‘우리 아들’, ‘언니’와 같은 대명사는 대체하기 어려운 것 같아 고민이 돼요.
E-2 포용적인 언어의 중요성
어조를 쓰지 않는 언어를 말합니다. 의도적으로든 무심코든 타인을 배제하지 않는 언어죠.
말은 중요합니다.
언어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누군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죠.우리는 포용적인 언어로 상호 존중, 존엄, 포용, 소속감이 바탕이 된 문화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요.
포용적인 언어를 쓸 때는 사회가 개인적 특징을 바탕으로 어떻게 한 사람을 정의하느냐에 집중하기보다,
그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 결정 장애
⟶ 우유부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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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팔
⟶ 반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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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쳤다
⟶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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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벙어리가 되다
⟶ 할 말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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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가다
⟶ 접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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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편에 서다
⟶ 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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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을 수동적으로 묘사하거나 특정 조건 및 진단명, 사회적•물리적 특징 등으로 정의해버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마세요.
- 가능한 한 상대방에게 어떤 언어를 선호하는지 매번 물어보세요.
- 단어에 차별이나 비하의 의미가 내포돼 있지 않은지에 주의하세요.
멀쩡하게 느껴지는 단어라도 우월주의와 억압의 역사에서 유래했을 수 있습니다.
- 전통적으로 이름에 따라 젠더를 추측해 상대방의 인칭대명사를 가늠하는 걸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트렌스젠더만 인칭대명사를 공유해야 한다는 시스젠더 규범적인 생각에도 맞설 수 있고요. 트렌스젠더만 이 부담을 짊어지지 않도록 연대할 수 있는 거죠.
- 개인의 특성이 아닌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하세요.
-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내 언어 때문에 누군가가 배제되었다고 느끼진 않을까요? 타인의 젠더를 추정하고 있나요?
- 사람들에게 어떤 인칭대명사를 쓰는지 물어보세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이름을 물어보듯, 인칭대명사를 물어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여기세요. 인칭대명사를 말하는 걸 편안해하는 사람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선택과 선호를 존중하세요.
- They, them, their 같은 논바이너리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 아직 상대방의 젠더 정체성을 모른다면 논바이너리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세요.
-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이름과 인칭대명사를 알려주었다면, 그것을 사용하고 존중하세요.
고등학교 때, 어떤 친구가 “너 장애인이야?” 이런 식으로 다른 친구에게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때 저는 너무 불편했는데, 그 친구랑 친하지도 않고, 거기서 정정하면 그 친구 성격상 저를 싫어할 것 같아 정정하지 못했었고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부를 때 “불편한 친구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요. 또, ‘여성적’인 제스처를 하는 남자에게 “너 게이야?” 이런 말을 하는 것도 학교 다닐 때 정말 많이 들어본 것 같고요.
저는 “미쳤다”는 게 저의 정체성과 같다고 느껴서, 그런 말을 안 하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더 포용적인 언어로 바꾸어 말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맥락이 있잖아요. 그래서 정말 어렵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바꿔나가야겠죠.
의도치 않게 포용적이지 않은 언어를 내뱉지 않도록요.
언어는 위계와 권력, 그리고 문화 등 정말 다양한 걸 담고 있잖아요. 이 책의 첫 번째 파트에서 ‘우리의 기본값은 인종차별적’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언어에도 특권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어떤 상황에서는 기득권자라면,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써왔던 언어 속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 거겠죠. 의도치 않게 포용적이지 않은 언어를 내뱉지 않도록요.
언어는 필연적으로 문화의 한 부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언어평등에 대해서 자주 얘기하는 이유도 언어 간 권력 차이 때문이에요. 어떤 언어는 식민지 시기에 정복을 많이 한 국가의 언어여서, 많은 국가에서 그 언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공식 언어’가 되기도 하고요.
저는 어떻게 하면 이런 언어를 정정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누가 “남성스럽다”라고 하면, 그 말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요. 그리고 단어를 바꾼다고, 예컨대 자궁을 포궁으로 바꾼다고 하면 “그런 걸 바꾸면 여자한테 기분이 좋은 거 말고 뭐가 좋냐?”라고 하지만, 그것도 중요한 거죠.
맞아요. 인식이 바뀌는 거니까요. 아까 말한 것처럼,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욕으로 쓰는 것도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잖아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빨간색이나 파란색처럼 아무런 가치나 선호의 판단이 안 들어가 있는 말이면 “너 파란색 좋아해?”라고 했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너 장애인이야?”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기분 나빠하고요.
만약 친구가 포용적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한다면 포용적인 언어로 정정하고, 인식을 바꾸는 게 그나마 쉬울 것 같지만, 저보다 한참 어른인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돼요. 포용적이지 않은 말씀을 하셨을 때 제가 갑자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이럴 수는 없으니까요.
저와 가까운 어른 분께서도 남아선호사상이 정말 강하셔서, 얘기를 듣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지만 저는 그냥 안 들리는 척 해요. 어차피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 인식을 바꾸시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또, 그렇게 얘기하면 제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진될 텐데, 그러면 저는 저대로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분은 그분대로 기분이 안 좋아질 거고요. . 그래서 속으로 타협을 하는 것 같아요. 대신, 질문을 해보는 건 좋을 것 같아요. 저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순수하게 물어보면 악의가 안 느껴지니까요.
E-3 돌봄 연습하기: 내가 사용하는 말을 포용적인 언어로 바꾸기
오랫동안 그래왔다면 배제적인 언어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쓰게 될 때도 있죠.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배제적인 단어가 있는지, 어떤 대체 표현이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더 포용적인 언어를 사용하려면 무엇을 기억해두면 좋을지도 생각해봅시다.
예를 들어…
- 포용적인 단어를 얼마나 자주 쓰는지 기록하기
- 포용적인 단어 목록을 만들고 그중 가장 적합한 표현 찾기
- 포용적인 언어로 기존 언어를 대체했을 때 변화를 기념하고 축하하기!
바꾸고 싶은 단어나 표현 | 대신 사용할 단어나 표현 |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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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양육자 | 사용 빈도 기록하기 |
68페이지에 ‘부모’라는 표현이 적힌 걸 보고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먼저 떠오른 게 ‘보호자’라는 표현이었어요. 그런데 옆에 ‘양육자’라는 대체 표현이 적혀 있더라고요? 다시 생각해보니, ‘보호자’라는 표현도 “보호를 해야 된다”는 의미가 내포돼있는 거니까, ‘양육자’로 대체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네요.
‘출산율’이라는 표현도 아직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출생률’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나서, ‘금쪽이’라는 표현을 비하의 의미로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비슷하게 ‘잼민이’나, ‘헬린이’라는 표현도요.
‘뉴비’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그런 표현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쓰는 게 제일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 프로그램에서도 출연하는 아이를 문제아라는 걸 알리기 위해 쓰기 시작한 표현이 아닌데, 변질된 것 같아요.
‘부모’는 ‘양육자’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녀’는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요?
‘아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예전에는 수유실을 ‘아기방’이라고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가족사랑방’ 이런 식으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오래된 지하철역 같은 데에 가면 전부 ‘수유실’이라고 되어 있는데, 최근에 지어진 백화점 같은 데에 가면 ‘돌봄방’, ‘사랑방’, ‘가족 쉼터’ 이런 표현으로 대체되었더라고요.
‘생리’를 ‘정혈’이라고 바꿔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정혈’은 깨끗한 피라는 뜻인데, 꼭 그렇게 표현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용어를 바꾸는 것보다,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에서 생리대를 주고 받을 때도, 코너에서 숨어서 주곤 했던 기억이 있어요. 반 아이들의 90%가 여학생이었는데도요. 한 번은 가방을 정리하다가 생리대가 나와서 탁자에 올려둔 적이 있는데, 그걸 보신 분께서 “이렇게 보이는 곳에 두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안 그럴 수도 있는데, 예전에 특수학급을 ‘도움반’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다솜반’이라고 이름을 붙여 구분했던 것 같아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그 반의 숫자를 욕으로 썼던 기억이 나요. 그 반에 속한 아이들이 정말 소수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만 그 반에 모이는 걸 아니까요.
유스 활동가의 웰빙 워크북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휩쓸리지 않는 법』
본 워크북은 인권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과 액티비즘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도구, 연습활동을 제공합니다. 이 워크북이 스스로를 더 잘 돌볼 수 있게 하는 한편, 서로를 챙겨야 할 필요를 깨닫게 함으로써 인권을 위해 싸우는 여러분의 여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