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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밤’ 상영회 후기: 쉼표가 아닌 따옴표를 읽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25년 2월 27일 ‘끝나지 않는 밤- 가자지구의 집단학살을 마주하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님과 가자지구의 집단학살 현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상영회에 참여한 핑핑님의 생생한 후기를 통해 집단학살에서 연대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주세요.

작성자: 핑핑

지난 2월 27일 목요일 저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주최한 영화 <끝나지 않는 밤: 바이든의 가자 전쟁> 상영회와 이어지는 GV에 참석했다. 이 영화는 중동 언론 ‘알자지라’의 취재진이 2023년 10월 7일부터 벌어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기록한 것으로, 살렘 가족, 힌드 라잡, 알-가프 가족을 비롯한 가자지구 주민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 글에서는 영화 제작자와 나를 거쳐 간 가자지구 주민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GV에서 오간 이야기도 간략하게 담았다.

‘끝나지 않는 밤’ 상영회 행사 대기실

바다를 보면 근심과 고통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히바 살렘의 얼굴에는 슬픔과 그리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지난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때, 히바는 지속되는 공격을 버틸 수 없어 다른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옮겨갔다. 그 건물에는 살렘 내외와 자녀들뿐만 아니라 부모님, 사촌들, 사촌의 배우자들과 조카 등 대가족이 함께 지내고 있었지만, 12월 1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건물이 사라졌다. 사망자의 1/4이 어린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살아남은 살렘 가족은 다른 건물로 거처를 옮겼다. 이스라엘군은 모두 민간인이 사는 건물을 탱크와 불도저로 건물을 포위해 일주일 동안, 24시간 내내 폭격을 가하다가 마침내 특수군부대를 진입시켰다. 군인들은 가정집을 헤집고 다니며 민간인을 폭행하고 고문했다. 남성들을 한데 모아 처형했으며,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몸을 수색하며 혐오스러운 말로 조롱했다. 12월 19일의 일이었다. 이 일로 히바 살렘의 남편을 포함해 최소 11명의 남성이 사망했다. 히바의 4살 난 딸은 폭격이 이어지던 도중 언니의 품에서 사망했다. 전쟁 동안 가자지구에서는 죽음과 상실이 일상이 되었다. 국제법을 전례없이 위반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손아귀에서 어느 가족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대개 전세계의 구급차는 전화를 받은 즉시 구조를 위해 구급차를 출동시키지만 가자지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중략) 만약에 어떤 구급차가 접근하려고 한다면, 타겟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힌드를 구하기 위해서는 접근 허가를 받아야 했던 거죠.”

– 네발 파르사크 (Nebal Farsakh), 팔레스타인 적십자가(PCRS) 대변인

1월 28일,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 북부의 가자시티에 거센 공격을 가했다. 딸, 조카 라얀, 삼촌과 숙모를 잃은 위샘의 이야기이다. 공격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기 위해 라얀과 힌드를 태운 차가 먼저 떠났으나, 차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폭격이 시작되며 라얀과 힌드는 즉사한 어른들과 함께 차에 고립되었다. 구급차가 출동 허가를 받은 건 3시간 만이었다. 대원들은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되어 로켓을 맞아 즉사했고, 힌드의 숨도 멈췄다. 언젠가 라얀은 외과의사가 돼서 사람들을 많이 치료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힌드가 자기는 치과의사가 될 거라며, 같이 병원을 차리자고 되받았다. 작은 몸에 학사복과 학사모를 걸친 힌드의 사진 위로 위샘의 나레이션이 흘렀다.

끝나지 않는 밤 상영회 GV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밤’ 상영회 GV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객석에는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GV 패널이었던 살레 님은 2022년부터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살레 님은 영화를 함께 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진솔하게 답했는데, 나는 답변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글 서두에서 언급한 살렘의 가족은 살레 님이 살던 동네와 400m 떨어진 곳에서 살던 이웃이었다. 6살 힌드는 살레 님의 조카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던 친구였다고 한다. ‘영화에 아는 사람들이 나와서 놀랐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영어와 한국어로 전달되어 좋다’고 덧붙였다.

문득 ‘우리집에서 그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사는 친구가 누구더라?’ 싶었는데, 몇몇 아는 얼굴이 떠오르자 참을 수 없이 슬퍼졌다. 하마스-이스라엘 휴전 소식이 있기 며칠 전에도 한 강연에서 살레 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휴전에 대해 ‘그동안 죽음에 슬퍼할 틈이 없었기 때문에 휴전 후에는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전쟁 동안 죽은 가족, 친구, 이웃들을 애도하느라 또 다른 힘듦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던 기억이 난다.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 알-란티시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 알-란티시

총과 폭탄이 앗아간 생명의 개수에 대해 읽거나 말할 때면, 커다란 숫자 앞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때로는 무감각해질 때도 있었고 그런 내 모습에 놀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숫자가 아니라 각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그렇게 했을 때, 그러니까 숫자 중간에 끼어 있는 쉼표를 세지 않고 단 한 사람의 이야기라도 제대로 마음에 담았을 때, 변화는 찾아온다. 밀려오던 복잡한 감정은 슬픔, 분노, 안타까움 등으로 명명할 수 있게 되고, 수치 앞에 무감각해졌던 마음은 아는 사람을 잃었을 때처럼 아파온다.

영화에 원거리 촬영 장면이 세 번 정도 등장했다. 카메라는 맨몸으로 황야를 걸어가는 한두 사람을 비추는데, 이내 내 동체시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화면 속으로 날아든다. 그 순간 집채만한 회색 연기가 사람의 형체를 가리면서 사망선고를 대신했다. 카메라는 끝없이 줌아웃을 하는 것 같더니 이제 황야가 아니라 건물의 옥상들을 비춘다.

<끝나지 않는 밤>과 같은 다큐멘터리나 예술 보도를 본 자리에서는 언제나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묻는 질문이 나온다. 나는 죽음이 쌓여간 개수가 아니라 생명이 가졌던 서사를 알리고, 회색 연기를 비추던 카메라의 각도를 돌려 ‘누가’ 총알과 폭탄을 날렸는지 묻는 것이 팔레스타인의 연대자인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바이든 정권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현재는 트럼프 정권이 다시 들어섰다. 트럼프는 ‘가자지구를 접수하겠다’는 터무니 없는 망언을 늘어놓고, 네타냐후 총리의 입가에는 연일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누가 총과 폭탄을 날렸는지’에 이어 ‘누가 돈과 무기를 댔고, 누가 묵인했는지’ 물어야 한다. 강연, 상영회, 토론회 같은 자리는 연대자들이 모여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함께 모여 프레임을 다시 만드는 것. 이 밤을 끝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멈춰라’ 라는 팻말을 들고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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