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칼럼

[기고] 12.3 계엄군의 ‘케이블타이’가 남긴 고문의 그림자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케이블타이는 익숙한 도구다. 깃대에 깃발을 달거나 야외에서 간이로 집회무대를 꾸밀 때, 구조물을 단단히 고정하는 데에는 케이블타이만큼 톡톡히 제 역할을 하는 것도 없다. 집회 준비를 할 때면 케이블타이와 가위를 들고 간이무대로 쓰일 트러스를 설치하는 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그르륵, 그르르륵”, 플라스틱 타이가 홈을 긁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반복되고 나면, 간이무대의 뼈대가 얼추 다 완성된다. 이걸로 사람을 ‘묶을 수’ 있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내 일상 속 도구였던 케이블타이는 12.3을 거치며 ‘내란사태’의 인권침해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12.3 비상계엄의 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뉴스토마토 소속 취재 기자를 케이블타이로 포박하려 한 장면이 국회 CCTV 영상을 통해 공개되었다. 해당 영상은 케이블타이가 “문을 잠그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던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의 증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계엄군이 언론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한 정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허위 증언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자에 대한 무력 체포 시도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명백하게 침해한 행위이며, 동시에 대한민국이 비준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이 보장하는 고문금지, 자의적 구금 금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인 유지웅 기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계엄군에 강제로 연행당하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으며, 케이블타이로 여러 차례 결박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극심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국제인권법은 어떤 비상사태 속에서도 고문과 부당대우를 절대 금지하는 ‘비가역적 권리’를 명시한다. 유엔 인권위원회 또한 계엄령 등 국가 비상사태 하에서도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국제기준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계엄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졌던 고문 및 기타 부당대우, 그리고 언론탄압은 국제인권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케이블타이의 국내 및 국제 법적 지위이다. 12.3 계엄군이 사용한 케이블타이는 일반적인 케이블타이와는 달리, 단단하고 두꺼운 플라스틱 스트랩이 두 개의 고리로 구성되어 손목 등 신체를 결박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구로, ‘플라스틱 구속도구’ 혹은 ‘플라스틱 수갑’으로 부르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실제로 플라스틱 수갑은 12.3 이전에도 민간인에 대한 고문 및 기타 부당대우에 사용된 사례들이 존재한다. 작년 10월 김건희 특검법 거부에 항의하며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던 대학생들이 케이블타이에 결박당한 채 연행당했고, 2021년에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모로코 국적의 난민신청자가 이른바 ‘새우꺾기’ 가혹행위를 당하는 과정에서 케이블타이로 결박당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이 장비가 현행 법률상 위해성 장비로 규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이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플라스틱 구속도구가 현재 아무런 규제 없이 민간 시장에서도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생활용품, 의류, 성인용품을 취급하는 국내 다수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누구나 쉽게 플라스틱 수갑을 구입할 수 있다. 이는 곧 12.3 당시 플라스틱 수갑을 동원한 계엄군의 인권침해 행위가 모두의 일상에서 쉽게 반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23년 유엔 고문방지특별보고관은 고문이나 학대에 쉽게 오용될 수 있는 도구들에 대한 사용과 거래 행위 전반에 있어 국제적 규제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플라스틱 구속도구를 명시적으로 문제 장비 목록에 포함시켰켰다. 12.3 계엄군의 ‘케이블타이’ 사용은 이러한 도구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고문 및 기타 부당대우에 쓰일 수 있으며, 심각한 인권침해에 오용될 위험이 있음에도 이 장비들에 대한 법적 규제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인권단체들과 함께 유엔의 “고문 없는 무역 조약(Torture-free Trade Treaty)” 채택을 촉구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학대적인 장비의 제조와 거래를 금지하고, 통용되는 법 집행 장비에 대해서도 인권 기반의 국제적 규제를 마련하려는 국제적 움직임이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여, 고문 도구에 대한 국제적 통제장치 도입에 기여해야 한다. 동시에, 보다 시급하게 필요한 조치는 국내법 개정을 통해 플라스틱 구속도구처럼 오용 위험이 큰 장비에 대한 규제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국가긴급권의 남용에 희생되어 온 아픈 역사를 언급했다. 과거 독재 정부들이 남용했던 비상계엄령은 고문을 정당화하며 민중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12.3 비상계엄은 그 인권침해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었다. 내란정부와 12.3 비상계엄은 우리 사회에 산더미 같은 과제를 남겼다. 고문과 기타 부당대우를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는 것, 모두가 함께 만들 ‘윤석열 이후의 세계’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할 일이다.

*국제앰네스티는 고문도구 규제를 요구하는 온라인 탄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김한민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기사 원본 출처: “12.3 계엄군의 ‘케이블타이’가 남긴 고문의 그림자” (경향신문, 20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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