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23년 이래 HD현대의 주주총회 날을 기해, 이스라엘이 점령중인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HD현대의 장비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가옥을 파괴하고 불법 유대정착촌과 그 인프라를 건설하는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오늘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HD현대 산하 자회사인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등의 중장비들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에서 뿐 아니라 2023년 10월 이후 집단학살이 자행되어온 가자지구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수행한 2019년 9월부터 2025년 2월까지의 사례 조사에 의하면, HD현대의 장비 사용으로 최소 25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집을 잃고 강제이주 당했습니다. 강제 이주와 주거지 파괴는, 군사적 점령지역에서 민간인 보호와 관련된 법적 의무를 규정짓고 있는 4차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 범죄에 해당합니다.
2011년 6월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승인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 UNGPs 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은 기업이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해결할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규정합니다. UNGPs에 따르면, 기업은 법률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정부가 인권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가에서도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HD현대의 자회사로서 굴착기를 생산하는 HD현대건설기계는 2022년 인권경영 지침을 발표하며 UNGPs 준수를 강조하고, 사업 운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위반을 거부하며 지역 주민의 권리 침해에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핵심적인 도구
– 가옥파괴와 강제 이주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24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스라엘 당국은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영토 내 가정집 766채를 포함한 상점, 가축 우리, 수도관, 통신시설, 학교 등 1,768개 구조물을 파괴했습니다. 이로인해 4,265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강제이주 당했으며, 자신의 집이 부서지지 않았더라도 영향을 받은 이들은 16만 5029명에 달합니다.
가옥 파괴와 강제 이주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청소와 불법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지원하며,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핵심적인 도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영토적 연속성을 차단하고, 점령을 영구화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의 일환입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부터 3차 중동전쟁까지 팔레스타인 영토의 변천. 빨간색이 유대계 정착촌, 노란색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나타낸다.
1948년 팔레스타인 영토에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지역 인구의 70%를 차지하며 사유지의 90%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에 사는 유대인은 인구의 30%를 차지했고 유대인과 유대인 기관 소유의 토지는 6.5%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은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을 대규모로 추방하고 이들의 거주 공간을 파괴했습니다. 약 8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되었고, 그들의 거주지와 재산은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유대계 이스라엘인에게 혜택을 주며 이들의 토지와 자원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지속해왔습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군사 점령하기 시작했고, 팔레스타인 점령지역(OPT,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 불법 유대 정착촌을 건설하며 국제법을 위반했습니다. 2023년까지 약 300개의 정착촌과 전초 기지에 약 465,000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서안 지구에 거주했으며, 약 230,000명의 정착민이 동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

거주지별 팔레스타인인의 거주 인구 구성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누구의 땅도 아니며, 1947년 가결된 UN 결의안 181에 따라 ‘국제 관리지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67년 동예루살렘을 일방적으로 점령한 후, 1980년 자국 영토로 불법 병합해 수도로 선언하며 점령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지역 개발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건축 허가 절차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주민들이 허가 없이 집을 짓거나 확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그 결과, 건축 허가 위반을 이유로 행정적 철거명령과 징역형, 벌금 등을 동반하는 형사 처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안지구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A, B, C 구역으로 나뉘어 통제되는데, 서안지구의 60%를 차지하며 농업과 목축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지역인 C 구역은 이스라엘군이 완전한 군사적, 행정적 통제를 행사하는 지역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지역에서 건축이나 개발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군사 훈련이나 문화 유적지 보호 등을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땅을 빼앗고, 불법 유대정착촌과 군사 기지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의 가옥과 농지 파괴로 비워진 땅은 이스라엘의 정착촌과 그 인프라 확장을 위해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은 2차 인티파타(2000년 시작된 민중봉기) 당시 가자지구에서 이 정책을 수행해 농경지와 주택, 목축지 등을 구조적으로 몰수해 온 바 있습니다.[1] 이스라엘 당국은 정착촌 건설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도로와 수자원 등 인프라 확장을 위해 더 넓은 지역을 개발하며,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집과 도로를 파괴하고 분리장벽으로 땅을 나눕니다. 이로 인해, 점령된 지역의 인구 구성은 영구적으로 변화하고(아랍인 수 감소, 유대인 수 증가), 팔레스타인 공동체 간의 영토적 연속성이 끊어지게 됩니다.
HD현대 기기로 집이 부서져버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야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 가옥 파괴 및 강제 이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권, 생계권, 물에 대한 권리, 평등권, 차별금지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정부는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의 토지와 자원을 착취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의 이스라엘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수자원에 우선권을 가지며,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마을은 먼 거리에서 물을 사와 개별 물탱크에 물을 저장해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정착촌은 수영장, 잔디밭,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차별적인 도시 계획과 구역 지정 시스템을 구축하여, C구역에서는 팔레스타인 개발을 위해 토지의 1%만 할당하고, 정착지에는 70%를 할당합니다. 동예루살렘의 35%는 정착지 건설에 사용되며, 팔레스타인 건설은 13%로 제한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규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책은 국제적으로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을 위반하는 행위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2024년 10월, 국제앰네스티는 현지 인권단체 베첼렘과 협력하여 HD현대의 기계로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증언 8건을 확보했습니다.
1. 복잡한 건축 허가 구역 구분으로 집이 철거당한 피다(47)의 이야기
저는 동예루살렘 히즈마의 바데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2] (이 마을은 서쪽으로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분리장벽에 의해 예루살렘과 차단되었고, 동쪽으로는 정착촌에 의해 서안지구와 연결이 끊어져 있다, 편집자 주)남편은 1984년에 1년 반 동안 수감되었을 때 고문을 당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습니다. 남편은 석방 이후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순교자 재단에서 매월 일정 금액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다니는 세 딸이 있으며, 첫째 아들은 정신장애 및 신체장애가 있고 현재 38세 입니다. 가끔 저희 가족과 대학생 딸들을 위해 재정적인 기부를 받기도 합니다.
히즈마는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주에 속해 있는 마을입니다. 한때 마을과 예루살렘 시를 연결하는 버스가 있었으나,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건설과 군사 검문소 설치 이후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들과 노동자들은 이스라엘 민간행정청에서 허가를 받고 칼란디아 군사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으면 예루살렘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히즈마 마을은 히즈마의 산과 들에 세워지는 정착민 전초기지로 인해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정착민들은 마을의 양치기들이 황무지에서 양을 치는 것을 막고 있으며, 가옥과 상업용 상점 철거 정책 또한 만연히 시행되고 있습니다. 마을 일부는 예루살렘 시 경계 내에 있는데, 예루살렘 시는 경계 내 상점들을 지속적으로 철거하고, 서안지구에 위치한 마을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군정 산하) 민간행정청이 주택과 상업용 상점들을 철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철거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 상인, 그리고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노동자들은 이스라엘 지역 및 예루살렘으로의 출입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히즈마 주민으로서 특히 2014년부터 철거정책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 시아버지께서는 우리 가족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서안지구 C 구역에 있는 땅을 증여해 주셨습니다. (히즈마는 오슬로 협정상 마을 내 A구역이 9%, C구역 91%을 차지하고 이 가족의 집은 A 구역에 위치해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행정을 관할하는데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을 관할하는) 예루살렘 주 히즈마 시에서는 건축허가를 받았지만 2017년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이스라엘 민정청은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몇몇 변호사를 만나보았지만 이 행정명령을 취소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철거 명령이 내려졌지만 아직 집행되지 않은 주택들이 몇 개 있습니다.
2024년 9월 8일, 세 사람이 흰색 지프차를 타고 동네에 나타나 집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이스라엘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제 남편이 나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은 “별 일 없을 겁니다. 신의 뜻대로”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인 2024년 9월 9일 오전 5시,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편과 제가 문을 열었습니다. 민정청 직원 한 명이 저희에게 집이 철거될 테니 즉시 집을 비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장애인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을 집 밖으로 부축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직원은 “그건 우리 임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가구만 치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친척들이 와서 아들을 이웃집으로 옮겼는데, 우리가 다 나가기도 전에 불도저들이 집 주위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철거 명령서를 보여달라는 제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철거는 불도저 두 대가 동원되어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한 대는 ‘현대(Hyundai)’라고 적힌 검은색, 다른 한 대는 ‘히타치(HITACHI)’라고 적힌 주황색이었습니다. 저는 거기 서서 철거를 지켜봤고, 슬픔과 고통 속에 그들에게 울며 소리쳤습니다. “이건 부당합니다! 우리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리는 갈 곳이 없다고요!” 철거를 지켜보던 군인들은 저를 돌아보았는데,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냥 웃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은 히즈마에 사는 남편의 형제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형제가 1층에서 같이 생활합니다. 이로 인해 제 남편의 형제는 경제적 부담이 커졌는데, 그는 이미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 구역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허가를 취소당해 예루살렘의 직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우리를 모두 부양할 만한 수입이 없어 경제적 부담은 대단히 크고, 그의 가족도 일곱 명이나 됩니다. 우리 집이 철거된 날, 이웃 두 집에 대해서도 새로 철거 명령이 나왔습니다.
2. 수차례 살던 곳에서 쫓겨난 압드(57)의 이야기


저는 농업과 목축업에 주로 종사하며 예리코의 알지프틀리크 마을에서 수십 년간 살았습니다. 저는 점령군의 계속되는 인권 침해로 인해 큰 피해를 겪었습니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여러 차례 집에서 쫓겨났고, 목초지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지금도 점령군은 우리가 가족을 위해 아무 것도 짓지 못하게 하는 등 마을 안에서도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2024년 9월 18일 아침은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군용 지프차, 민정청 차량 여러 대,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저희 집을 둘러쌌습니다. 가족이 머물기 위해 제가 지은, 아직 다 완성도 되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커다란 무한궤도식 불도저가 같이 온 것을 보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도저 뒤쪽과 해머에는 ‘현대(Hyundai)’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걸 본 순간 저희 집을 부수려고 온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도저는 저와 가족의 꿈을 부숴 버렸습니다. 불도저 운전기사는 제가 지은 다른 건물 옆에 불도저를 세우고 모든 걸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건 무너진 돌무더기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이유를 들며 땅 위에 서 있는 모든 걸 파괴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커다란 장비와 군인들을 동원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저는 매일 집들이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철거에는 이러한 대형 불도저들이 사용됩니다. 이렇게 커다란 장비를 두 눈으로 보면 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불도저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주변이 전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인들과 그 지원 인력, 운전기사들은 무자비합니다. 그들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저는 어렵게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벽돌을 쌓아 지은 집이었습니다.
제 아이들의 꿈은 부서졌고, 제가 공들인 모든 것은 커다란 장비의 발 밑으로 사라졌습니다. 남은 건 폐허 뿐입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폐허를 바라보며 저는 집이 부서지던 순간을 끊임없이 떠올립니다. 저희 집이 철거된 그날, 그들은 같은 대형 장비를 동원해 주변 마을의 집 여러 채도 철거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장비가 나타난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며, 물탱크나 다른 주거용 건물이 파괴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빼앗기고, 자신의 땅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은 부서져 버립니다.
3. 베두인족의 유산과 집을 모두 박탈당한 아웨다(54)의 이야기
저는 1948년 (지금은 이스라엘 도시가 된) 비어시바(Beer sheva)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베두인족 난민입니다. 제 가족은 동예루살렘의 아나타(Anata) 마을에서 25년간 살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섯 명입니다. 아들 샤디(Shadi), 그리고 결혼한 네 딸이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세 가정을 합하면 어린이 10명, 여성 4명을 포함해 총 18명입니다. 저는 건설노동자이고, 양을 키우면서 배두인족의 생활방식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령당국의 철거정책, 그리고 토지 몰수를 동반한 아파르트헤이트 분리장벽 및 정착촌 건설로 목초지가 부족해졌습니다. 2000년 이전 아나타 마을 주변에서 제가 사용하던 목초지에는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때 양 60마리를 쳤지만, 지금은 10마리밖에 안 됩니다.
아나타는 분리장벽과 이스라엘군 검문소에 의한 철거 및 포위 정책으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마을입니다. 아나타에는 네 개의 행정구역이 있습니다. 오슬로 협정에 따른 A, B, C 구역, 그리고 예루살렘시에서 관할하는 알살람(Al-Salam) 구역입니다. 알살람 구역은 분리장벽 바깥에 있고, 이스라엘 거주 허가를 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슈파트 검문소와 하즈마 검문소를 거쳐야만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루살렘 점령당국에 세금을 내는데도 점령당국의 군 검문소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불편을 겪는 것입니다.
저와 아들 샤디, 형제 유시프가 겪은 철거는 2022년 6월 28일 일어났습니다. 그날 오전 5시에 현대 불도저 두 대가 점령군 군인들, 이스라엘 민정청 직원들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철거 명령이 석 달 전, 우리도 모르는 사이 내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5년 전에 작업중지 명령을 받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한 인권 단체가 이 사안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해결된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작업중지 명령에 대해 잊고 있었고, 그 이후 어떤 인권 단체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불도저와 함께 온 작업자들은 우리가 사는 집에서 물건들을 치우고, 저와 유시프의 양들을 헛간에서 몰아냈습니다. 철거는 오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진행되었고, 집 세 채와 양 헛간 두 채가 철거되었습니다. 불도저들이 떠난 후에 우리는 다시 나무로 집 세 채를 지었고, 양들은 가까운 아라라 부족 집의 헛간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후, 이스라엘 민정청은 우리가 새로 지은 집이 미허가 건물이라면서 다시 불도저로 철거했습니다. 증언을 하는 오늘로부터 두 달 전에는 2차 철거 이후 우리가 또 다시 지은 집 세 채에 대한 철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철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경제적 재난입니다. 도시의 주택과 비슷하게 벽돌로 된 벽, 판넬 지붕, 타일 바닥을 갖춘 집을 짓는 데는 돈이 아주 많이 듭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제 가족은 나무와 아연 지붕으로 지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 철거된 집처럼 다시 지을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가 치는 양 두수는 철거 정책, 장벽 건설, 목초지 부족으로 인해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는 40㎡, 다른 하나는 60㎡ 넓이였던 양 헛간 두 채는 2022년 6월 28일에 철거되었습니다. 언급한 것처럼 제 양은 60마리에서 10마리로 줄었고, 제 형제 유시프의 양은 80마리에서 20마리로 줄었습니다. 물론 이제 양을 치는 것은 경제적으로 이익이 없지만 베두인족의 유산이며, 베두인족은 자신이 양을 몇 마리 치는지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제 양을 치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목초지가 부족하고 산업용 사료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듭니다. 따라서 양 두수를 줄이는 것이 관습이자 전통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당연히도 불안과 긴장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나무와 아연 지붕으로 투박하게 지은 집도 언제 점령당국의 불도저에 의해 철거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4. 분리장벽으로 기존 마을이 나뉜 지역에 사는 나엘(33)의 이야기
저는 서안지구 아나타(Anata) 주민으로, 차로 5분 거리인 동예루살렘 마을 히즈마에서 11년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이 하나를 포함해 세 명입니다. 제 형제 이스하크의 가족은 아이 셋을 포함해 다섯 명입니다. 정비소는 저와 이스하크가 함께 운영합니다.제 사업체가 있는 히즈마와 제가 사는 아나타는 모두 한 해 내내 철거 정책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철거 대상은 주택과 상점입니다. 히즈마는 지난 몇 년간 봉쇄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출입구를 시멘트 벽돌로 막아 놓고 히즈마 주민이라고 적혀 있는 신분증이 없으면 들여보내 주지 않습니다. 정비소를 찾거나 차량 부품을 구입하려는 고객들도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에도 피해가 발생합니다.
2000년 아파르트헤이트 분리장벽이 건설되기 전, 히즈마와 아나타는 둘다 예루살렘의 마을이었습니다. 두 마을을 예루살렘 올드시티까지 연결하는 대중교통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경제, 의료, 종교 면에서 연결되어 있었고, 알아크사 모스크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 분리장벽으로 인해 히즈마 및 아나타 주민들의 삶에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서안지구 라말라(Ramallah)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라말라에서 치료도 받고 상업 서비스도 이용하곤 합니다.
약 한달 전, 저는 아연 지붕, 벽돌, 방수 천으로 정비소를 넓혔습니다. 기존 정비소는 차가 한 대밖에 들어가지 않는 차고였기 때문입니다. 가로 27m, 세로 30m에 해당하는 면적을 넓히자 차 세 대를 동시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민정청의 철거 명령서가 정비소 문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변호사와 상담을 했는데, 그는 ‘상속인 결정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땅 주인에게는 그런 문서가 없었습니다. 변호사는 법적으로 철거를 막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2024년 9월 9일 월요일 오전 9시, 현대 불도저 한 대가 점령군과 민정청 차량들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정비소를 증축한 부분을 철거했습니다. 사복을 입은 이스라엘군 장교는 정비소에 들어와 있던 차 두 대를 5분 안에 치우라고 했습니다. 저는 몇 년간 고생한 결과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그 자리에서 지켜봤습니다. 컴프레서, 정비용 리프트, 차량 중고 부품 등 장비는 미처 치우지 못해 철거된 잔해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철거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그들은 제가 벽돌, 아연 지붕, 천으로 넓힌 부분만 허물고 원래부터 정비소였던 차고 부분만을 남겨 두었습니다.
건물과 장비 비용을 포함해 경제적 손실은 5만 셰켈 정도로 추정합니다. 저는 수입원을 잃게 되어 가슴이 너무나 아픕니다. 남은 정비소는 넓이가 20㎡밖에 되지 않아, 차 한 대도 정비하기 어렵습니다.
5. 결혼식 열흘을 앞두고 신혼집이 철거된 오사마(29)의 이야기
2024년 9월 10일 화요일 오전 9시 30분, 저는 집에 있다가 철거 장비들이 나타난 것을 봤습니다. 현대 굴착기 두 대, 볼보 불도저 한 대, 민정청 차량 세 대, 작업자 차량 한 대, 국경경비대 및 군이 사용하는 군용 차량 네 대였습니다. 장비와 차량들은 야타(Yatta) 동쪽 아그지와(Aghziwa) 지역에 있는 저의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317번 정착민 도로를 통해 다가왔습니다. 저는 철거가 이렇게 집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 주 전에 변호사와 연락을 했는데, 저희 집에 대한 소송 진행이 연기되었고, 승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비들은 마을의 다른 집들을 지나 저희 집 바로 옆에 멈춰섰습니다. 군인 30명 정도가 내렸고, 일부는 저희 집을 둘러싸고 주위에서 모여든 친척들과 이웃들을 밀어냈습니다. 동시에 군인 10명 정도는 저와 제 형제, 아버지, 어머니, 제 형제의 부인을 집에서 강제로 끌어냈습니다. 저는 철거 책임자에게 변호사가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3분 후 철거를 시작한다. 7분을 줄 테니 집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을 챙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몇 분 사이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가지고 나오려고 애썼습니다. 냉장고, 매트리스, 문짝 세 개, 옷의 3분의 1, 그리고 작은 캐비닛 몇 개였습니다. 하지만 가구 대부분은 안에 남겨둔 채 집을 나가야 했습니다. 철거 작업자 한 명이 지붕에 올라가 전선을 끊었습니다. 굴착기 한 대가 다가가 우리가 집 옆에 20년 전 만든 120㎥ 용량의 우물 지붕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굴착기가 첫 번째 굴착기의 반대편으로 가서 집을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만드는 데 몇 년이나 걸린 집이 너무나 쉽게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일하며 저축해서 24만 셰켈 정도를 모아 지은 집이었습니다. 철거되기 한 달 전에는 2만 셰켈 정도를 들여 침실 가구 세트를 사고 부엌을 새로 단장했는데, 철거 과정에서 다른 가구들 대부분과 함께 파괴되었습니다.
굴착기들은 30분 만에 집을 완전히 허물어 버렸습니다. 다음으로 불도저가 철거된 잔해 일부를 우물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물을 못 쓰게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철거된 집은 180㎡ 넓이 면적으로 제가 3년 전에 지었습니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면서 월급을 모아 지은 집이었습니다. 2023년 6월 23일, 민정청 직원 하나가 와서 집에 작업중지 명령서를 붙였습니다. 저는 바로 변호사를 찾아갔습니다. 변호사는 세금 완납증명서를 발급받고, 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인접 토지와 정확한 경계가 표시된 상세 설계도를 측량을 통해 작성해 보내달라고 해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민정청에서는 저희가 제출한 주택 소유 문서에 표시된 지명이 요르단 공문서에 따라 ‘아그지와(Aghziwa)’로 되어 있는데, 영국 공문서에는 ‘마라알바티야(Marah Al-Batia)’라고 되어 있어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예루살렘주 당국의 도장이 찍힌 문서를 확보해 지명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주장했지만, 민정청은 저나 제 변호사에게 철거 통지도 하지 않은 채 집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사전에 통지만 있었어도 철거 장비들이 도착하기 전에 집을 완전히 비울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법적 절차에는 약 1만 7,000 셰켈(510만 원) 정도가 들었지만, 결국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면 이 집에서 가정을 꾸릴 생각이었습니다. 파괴된 집에는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거실 한 개가 있었습니다. 제 형제 무한나드의 부부와 아이 셋, 제 어머니가 함께 살 집이었습니다. 무한나드는 이제 삼촌 집에서 같이 살고 있고, 저는 다시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원래 2024년 9월 20일로 예정된 제 결혼식은 집이 철거되면서 기약 없이 연기됐습니다. 일자리와 돈이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저는 인생에서 몇 년 뒤로 후퇴하게 될 겁니다.
6. 아내와 네 아이와 살 집을 잃은 사허르(41)의 이야기
저는 용접공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고 있습니다.
13년 전, 저는 아버지와 함께 서안지구 베들레헴 동쪽의 마을 투쿠(Tuqu’)에 집을 하나 지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원래 100㎡ 정도 면적의 오래된 집에 살았습니다. 두 가족이 같이 살던 우리는 우리 소유의 땅에 새 집을 짓기로 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356번 도로에서 100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정착민들은 이 도로를 통해 테코아(Tekoa) 정착촌을 비롯해 주위의 정착촌들을 오갑니다.
새 집은 지붕이 있는 2층집이었습니다. 약 105㎡ 면적의 1층에서는 아버지네 식구가 생활했고, 2층에서는 저와 아내, 그리고 네 아이 열네 살 탈라, 열두 살 모함마드, 일곱 살 탈린, 다섯 살 쥬드가 생활했습니다. 집 아래에는 약 70㎥ 용량의 우물도 지었습니다.
12년 전, 민정청은 저희 집에 대한 철거 명령서를 송부했고 저는 인권단체에 저희 집에 대한 법적 방어를 의뢰했습니다. 약 1년 반 전, 저는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 집에 대한 새로운 구조도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그 이후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철거가 갑자기 진행된 겁니다. 미리 알았다면 집에서 가구와 물건을 미리 꺼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아내, 아이들과의 기억을 간직한 물건들은 모두 부서졌습니다.
2024년 8월 20일 화요일 오전 10시경, 저는 일을 하던 중 아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군인들이 집을 철거하러 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40분 후 집에 도착했는데, 군인들은 이미 현장에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제 신분증을 가져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작업자들은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집에서 가구를 꺼냈습니다. 군인들과 국경경비대는 집을 완전히 둘러싸고 주민들과 가족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작업자들은 우리 가족의 옷 4분의 1 정도를 포함해 가구를 일부 옮겼습니다. 부엌에서는 냉장고만 꺼냈는데, 그마저도 밖으로 끌고 나오다가 망가졌습니다. 침실과 부엌에서는 아무 것도 꺼내지 못했고, 집과 함께 모든 물건이 부서졌습니다.
철거는 현대 굴착기에 의해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같은 회사의 굴착기 한 대가 더 있었고, 볼보 불도저도 있었지만 실제 철거에는 현대 굴착기 한 대만 사용되었습니다.
철거가 시작될 때 제 아내 나다는 길 건너의 제 삼촌 집에서 창문으로 철거를 지켜보다 실신했습니다. 우리가 몇 년 동안 너무나 힘들게 짓고,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꾸민 집이 파괴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응급처치를 위해 아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군인들은 이스라엘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이후 제 형제가 아내를 알후세인 병원(Al-Hussein Hospital)으로 데려갔고, 진정제를 처방받았습니다. 현재 아내는 심리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 아이들은 다시 옛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7. 시 당국에 ‘철거 대리 비용’ 마저 지불해야 하는 수헤이브(33)의 이야기
저는 동예루살렘의 베이트하니나(Beit Hanina)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 셋을 둔 아빠이고, 세차장에서 일합니다. 저는 58세인 아버지 오마르와 함께 베이트하니나의 이층집에 살았습니다. 집은 저희 소유였고, 각 층은 150㎡ 넓이였습니다. 저는 2층에, 아버지네 가족 6명은 1층에서 생활했습니다.
집은 두 차례 철거되었습니다. 첫 번째 철거는 2021년으로, 제가 사는 층이 헐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함께 아래 층에서 생활했고, 나중에는 집을 아파트 두 채로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2023년, 아버지의 집 마저 철거되면서 두 가족 모두 살 곳이 없어졌습니다.
가장 최근에 진행된 철거에서는 불도저 두 대가 오전 6시에 저희 집을 철거했는데, ‘현대(Hyundai)’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집 없이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지금은 집 두 채를 임대해 살고 있고, 월세는 각각 1,500달러입니다.
철거로 인한 우리 가족의 고통은 2016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시 점령당국은 우리가 사는 마을을 재정비하면서 마을의 주택 다섯 채에 철거 명령을 내리고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저희 집은 1996년에 지었는데, 당시 당국에서는 아버지의 건물 허가 신청을 이유 없이 거절했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에게는 허가 없이 건물을 지었다는 이유로 벌금 25만 6,000셰켈(76,800,000 원)이 부과되었는데, 당국은 아버지의 건물 허가 신청을 또 다시 거절했습니다. 가장 최근 철거 명령이 내려지기 두 달 전에는 추가로 벌금 5만 셰켈이 부과되었고, 결국 2023년 철거가 집행됐습니다. 우리는 벌금 5만 셰켈(1500만원)을 매달 1,000셰켈(30만원)씩 나누어 납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철거가 있기 두 달 전, 시 법원은 (철거 명령에 대한) 우리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 최종 철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명령에 따르면 우리 가족이 직접 철거를 해야 했지만, 아버지, 우리 가족, 저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습니다. 주민이 자체 철거 명령의 수행을 거부할 경우 시는 철거에 동원된 불도저와 작업자에 대한 비용을 청구합니다. 현재 우리는 철거 비용을 시 당국에 납부할 수 있도록 청구서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2021년에도 자체 철거 명령을 거부했고, 철거 대리 비용 17만 4,000셰켈(5,220만 원)의 납부도 거부했습니다. 이렇게 철거 비용을 납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저에게 어떤 법적 조치가 취해질 지 모릅니다.
우리의 집들은 철거되었고, 가진 돈은 바닥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진 집 없이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데, 이 정도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가진 집을 잃고 월세를 내는 건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입니다. 월세가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끊임없이 안고 사는 것은 마치 목 앞에 칼이 매달려 있는 느낌입니다.
8. 집과 헛간이 철거되고 텐트마저 몰수당한 야꿉(36)의 이야기


저는 서안지구 마을 비린(Birin)에서 아내와 아이 셋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서안지구의 이곳 저곳에서 배관공으로 일합니다.
2019년, 점령당국은 80㎡ 넓이의 제 첫 집을 철거했습니다. 저는 2020년 다시 집을 지었고,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같은 해에 철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그는 토지등록증명서, 그리고 집과 토지의 세부사항을 포함한 상세 설계도를 요청했습니다. 이 서류들을 작성하는 데는 5,000셰켈이 들었습니다.
2024년 7월 4일 목요일, 저는 배관 일을 하러 가다 마을협의회 회장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철거 장비들이 마을 입구에 모여들고 있고, 마을의 집을 철거하려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미 베들레헴에 도착한 상태였지만 즉시 마을로 향했습니다.
오전 9시경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웃들이 모여들어 마을 입구에 대기 중인 철거 장비들이 어디로 갈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군용 지프차 네 대, 현대 굴착기 한 대, 불도저 한 대, 다른 굴착기 한 대, 민정청 차량 세 대, 그리고 집을 철거하기 전에 집기를 치울 작업자들의 차량이 한 대 있었습니다.
그들이 멈춰선 곳은 우리 집 앞이었습니다. 중무장한 군인들과 국경경비대 소속 30여명은 저희에게 집에서 100m 떨어지라고 했습니다. 작업자들은 집으로 들어가 가구 및 물건을 밖으로 꺼냈습니다. 저는 작업자들이 냉장고를 바닥에 쓰러뜨려 박살내는 것을 봤습니다. 그들은 옷장을 비롯한 다른 가구들도 집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마찬가지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 현대 굴착기가 다가와 벽돌 및 주석으로 만든 우리 집 지붕을 헐었습니다.
90㎡ 면적의 집이 파괴되는 데는 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들은 이어 동네의 다른 주택 아홉 채를 같은 방식으로 철거했습니다. 헛간도 하나 철거됐습니다. 그 날은 우리 모두에게 힘겹고 지치는 하루였습니다. 마을 하나에 아홉 세대가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땅에 텐트 다섯 개를 치고 그 안에 앉았습니다. 밤 10시경, 군복을 입은 정착민 세 명이 낡은 차를 타고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예전에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여기를 떠나라고, 무엇을 원하냐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총을 겨누는 바람에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제 아내, 아이들, 이웃 여성에게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10분 정도 후에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약 한달 후 2024년 8월 7일, 군인과 국경경비대, 민정청이 다시 마을에 와서 제 텐트와 이웃들의 텐트 다섯 개 마저 압수해 갔습니다.
저는 비린에 있는 땅에 캐러밴을 설치해 다시 이사를 갈 계획입니다. 점령당국이 철거하더라도, 저는 다시 집을 지을 겁니다.
2002년, (이스라엘) 정착민 두 명이 목표물로 오인되어 이스라엘 군용기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망한 곳은 우리 집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마을 농지였습니다. 바니헤버(Pnei Hever)에서 온 정착민들은 그들을 위해 작은 추모시설을 지었습니다. 정착민들은 유대교 휴일 등에 때때로 추모시설을 찾았고, 그 곳을 거점으로 마을에 있는 우리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추모시설에 항상 머물거나 거주했던 것은 아닙니다.
10.7 전쟁이 터진 이후 상황이 변했습니다. 정착민들은 추모시설에 건물을 추가하고 거주할 수 있는 캐러밴을 설치하는 등 자신들이 사용하는 땅을 넓혔습니다. 바니헤버 정착촌에서 이 시설로 이어지는 도로까지 만들었고, 트랙터로 우리 마을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오갔습니다. 이 정착민들은 때때로 군복을 입고 집을 찾아와 수색을 하며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초소 역할을 하는 이 시설을 계속 확장하면서 우리 마을을 지나다녔습니다. 두려운 상황이 되었고, 우리는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힘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 마을에서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점령당국은 마을에 원래부터 살고 있었던 우리의 집을 계속 철거하고 우리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한편, 정착민들에게는 대놓고 건물을 짓고, 도로를 놓고, 전기와 수도를 끌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우리 땅에서 쫓아내고 정착민들에게 넘기려는 분명한 정책입니다.
HD현대의 인권 존중 책임
기업이 팔레스타인 점령지OPT와 같은 분쟁 지역에서 인권법과 관련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여러 국제 법적 원칙과 기준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법적 프레임워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국제 인도법과 국제 인권법의 적용: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는 국제 인도법과 국제 인권법이 상호 보완적으로 적용됩니다. 국제 인도법은 무력 충돌 상황에서 군사적 점령과 관련된 법적 규제를 제공하며, 국제 인권법은 분쟁 지역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HD현대는 이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할 때, 군사적 충돌이나 점령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인권 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UNGPs): 유엔의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은 국제 인권법에 근거한 기업의 인권 책임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선언문으로,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음을 명시합니다.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이래 각 국가는 지침을 이행하기 위한 국가 행동 계획을 개발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운영 전반에 지침을 반영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지침은 분쟁 지역에서도 적용되며, 기업은 해당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실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HD현대는 실제 가옥파괴에 직접적인 계약 관계 등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관련된 비즈니스 관계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OECD 가이드라인은 각국 정부가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공동으로 제시하는 권고안으로, 다국적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는 책임을 강조합니다. 기업은 특히 분쟁 지역에서 운영할 경우, 인권 실사를 통해 인권 침해 위험을 평가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에는 적절한 해결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OECD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업은 다음과 같은 인권 관련 의무를 준수해야 합니다.
-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이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자사가 관련된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자사의 활동과 관련하여 인권 침해를 초래하거나 이에 기여하는 행위를 피해야 하며, 인권 침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해야 합니다.
- 사업 관계를 통해 자사의 운영, 제품 또는 서비스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인권 침해가 발생할 경우, 이에 기여하지 않더라도 예방하거나 완화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 인권 존중을 위한 정책적 약속을 수립해야 합니다.
- 기업의 규모, 운영의 성격 및 맥락, 인권 침해 위험의 심각성에 따라 적절한 인권 실사(due diligence)를 수행해야 합니다.
- 자사가 인권 침해를 초래하거나 이에 기여한 사실을 확인할 경우, 적절한 절차를 통해 피해 회복을 제공하거나 협력해야 합니다.
HD현대는 ‘정말’ 잘못했나?
합법적인 기업이 직접적으로 국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드뭅니다. 그러나 이런 범죄에 ‘공모’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기업에 대해 제기된 수많은 소송 중 대부분은 공공 또는 민간 보안군, 정부기관, 내전 중인 무장 세력 등과의 공모 혐의와 관련이 있었습니다.[3]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에 따르면, 기업이 다른 당사자가 일으킨 인권 침해에 기여하거나 기여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 공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모에는 비법적 의미와 법적 의미가 모두 포함됩니다. 비법적인 문제로서, 예를 들어 기업이 상대방의 인권 침해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다면 공모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팔레스타인 점령지(OPT)는 국제법상 불법으로 간주되는 지역입니다. 분쟁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은 군대나 보안군, 경찰 등이 저지르는 국제 인권 침해와 연관될 가능성을 높입니다. 이러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초래하거나 이에 기여할 위험이 커집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하에서 기업이 집을 철거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퇴거시키는 과정과 관련된 활동에 연루될 경우, 전쟁 범죄나 인권 침해에 관여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적 위험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입장을 담은 결의도 도출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9월,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이 불법으로 인정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또한, 유엔 총회 결의안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을 지원하거나 유지하지 않도록 회원국 및 그들의 기업들에게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지에서 발생하는 불법적 상황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HD현대는 단순히 건설 기계를 판매한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사업을 운영하거나, 그와 연계된 활동에 참여했다면, 이는 그 자체로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에 기여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이 국제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를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행위는 심각한 법적,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자세히 보기 : HD현대와의 소통의 기록 : 국제사회의 문제제기를 알고도 무시한 증거들
2011년 12월 – 팔레스타인 인권 침해에 관한 첫 공식 문제제기
HD현대의 장비는 현재 온라인상 확인되는 자료로 적어도 2008년부터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인권 침해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비즈니스 활동을 넘어 국제적인 법적 및 윤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임에도, HD현대는 이에 대한 책임과 대화를 회피해 왔습니다.인권 문제에 대해 기업과 광범위하게 협력하는 국제 NGO인 기업과 인권 국제 리소스 센터(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re)는 HD현대에 인권 침해 관련 문의를 보냈으나, HD현대는 이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회사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첫 번째 공식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2013년 – 유엔의 경고 및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제기
1월 한국의 시민단체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2013년 HD현대(당시 현대중공업)에 대해 제품이 동예루살렘에서 가옥 파괴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질의를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HD현대는 “당사의 장비는 단순히 장비 그 자체로 움직여 공급될 뿐, 어떤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공급된 것이 아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민간용으로 공급되지 군용으로 공급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또한, HD현대는 “이스라엘 AEG(Automotive Equipment Group)사에게 2013년 1월 초 거래 중단 통보 공식 레터를 이미 발송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후 EFCO가 이 지역의 새로운 딜러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AEG사와의 계약 종료 시점이 되어, 계약이 만료된 것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4월
서울 종로구 계동의 HD현대 (당시 현대중공업) 본사 앞에서 시민사회 단체들은 HD현대의 인권 침해 관련 문제를 알리는 첫 번째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5월
리처드 포크(Richard Falk) 전 유엔 팔레스타인 지역 인권 특별보고관은 HD현대의 장비가 불법 정착촌 확장에 사용되고 있다고 직접 언급하며, 이는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HD현대는 이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1월 – 글로벌 캠페인의 시작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발족한 비폭력운동 BDS(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중앙 조직인 BDS민족위원회는 네게브 움알히란에서 HD현대의 기계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HD현대 글로벌 보이콧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HD현대가 팔레스타인인 가옥파괴에 자사 제품이 사용되는 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비판받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냅니다.
2022년 2월: 마사페르 야타 주민들의 호소
1967년 이래 최대 규모인 1150여 명 주민에 대한 강제이주 명령이 떨어진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의 주민들은 HD현대건설기계에 편지를 보내 자사의 건설 기계가 사용되는 것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023년 3월 – 국제앰네스티와 한국 시민사회의 공동 기자회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HD현대의 공모 문제를 알려내기 위해 HD현대의 주주총회에 맞춰 한국시민사회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HD현대가 인권 침해에 가담하고 있음을 공론화하며 기업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기자회견 및 한국 시민사회의 1만 서명과 질의
3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한국 시민사회는 주주총회날 또다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4월, 집단학살 시점에 꾸려진 한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해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HD현대와 HD현대건설기계에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와 불법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사용되고 있는 굴착기와 관련하여 질의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HD현대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입장을 토대로 HD현대가 자사의 굴착기가 이스라엘 점령 당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HD현대가 진행한 전수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것을 요청했으나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5월,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2024년 3월 26일부터 2024년 5월 15일까지 HD현대의 팔레스타인 주민 가옥파괴에 책임을 묻는 1만 500명의 글로벌 서명을 HD현대 측에 전달했습니다.
HD현대는 지난 14년간 국제사회의 경고와 요청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무시하며, 증거를 조사하려는 태도조차 부족한 회사의 행동은 인권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의지가 결여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지금 요구해야 하는 것
국제앰네스티의 요구는 명료합니다.
- 국제앰네스티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과 기준에 근거하여 HD현대가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사용된 기계를 제공한 책임이 있음을 상기하며, HD현대가 이스라엘 당국에 기계를 직접 거래하거나 철거에 사용되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책임 회피임을 분명히 합니다.
- 이에 국제앰네스티는 HD현대가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인권 실사를 실시하고,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 이러한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HD현대 산하 현대건설기계(현대 로고 장비), 현대인프라코어(디벨론, (구)두산 장비) 등 HD현대가 생산하고 이스라엘에 판매하는 기계의 거래를 이스라엘 공식 딜러사를 비롯한 모든 채널에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탄원에 서명해 HD현대에 요구하세요
1. ↑ https://www.btselem.org/razing
2. ↑ 이 마을은 서쪽으로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분리장벽에 의해 예루살렘과 차단되었고, 동쪽으로는 정착촌에 의해 서안지구와 연결이 끊어져 있다, 편집자 주
3. ↑ UN Human Rights Council, A/HRC/4/35, para.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