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공습으로 불타는 상점에서 뛰쳐나오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어느덧 3년째를 맞이했다. 이번 전쟁이 초래한 인도적 참사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양측에서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수십만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공세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역의 민간 시설과 주거지가 광범위하게 파괴되었다.
이번 전쟁에서는 민간인 보호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는 무력 분쟁 상황에서도 민간인 보호를 최우선으로 규정한 국제인도법(전쟁법)에 어긋나며, 전쟁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2024년 2월,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가 자행한 전쟁범죄 사례가 12만 건이 넘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24년 10월 주러북한대사관 앞에 붙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진을 보고있는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
북한군 파병 속 간과된 인권
2024년 10월, 북한이 러시아에 자국 군대를 파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국제사회는 또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의 파병은 제3국의 참전, 즉 전쟁의 확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약 1만 1천~1만 2천 명으로 추산되는 북한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군사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북한군 참전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북한군 전력 분석이 미디어의 높은 관심을 받는 가운데, 정작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마주한 열악한 처우와 인권 문제는 상대적으로 간과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북한 군인들
드러난 북한 군인의 인권 실태
2025년 1월, 부상을 입은 북한군 2명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되었다. 우크라이나 당국과 일부 미디어가 공개한 이들의 증언을 통해 파병 북한군이 처한 열악한 인권 실태가 일부 드러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2차 가해로 볼 수 있는 문제점도 확인되었다. 이하 내용은 현재까지 공개된 파병 북한군 관련 자료에서 개인 정보 등 민감한 부분을 제외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1. 정보 차단
북한 군인들은 자신들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에 투입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러시아로 이동했다. 이들은 단순히 군사 훈련을 위한 이동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연하게도 파병 군인들은 가족에게 작별 인사나 안부를 전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진 지 5개월여가 지났지만, 북한 내 군인의 가족들 상당수는 연락은커녕 여전히 이들의 파병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 신분 조작과 법적 보호 부재
러시아 도착 후 북한군에게는 러시아인 신분증이 지급되었다. 이들은 본인의 국적을 숨긴 채 전투에 투입되었다. 실제로,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한 북한군에게서 위조된 러시아 신분증이 발견되었다. 북한군이 왜 러시아인 신분으로 전투를 치러야 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조작된 신분으로 전장에 내몰린 이들에게 북한과 러시아가 적절한 보호나 지원을 제공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신분을 위장한 채 전쟁에 투입된 북한군은 포로가 되더라도 국제법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포로의 대우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협약(제3협약)’과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협약에 대한 추가 및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제1의정서)’에 따르면, 무력 충돌에 참여한 군인은 포로로 생포되었을 경우 적절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포로로서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소속 국가가 명확히 식별되어야 하는데, 북한과 러시아 양국 모두 북한군의 파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북한군이 가짜 러시아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다가 생포되는 사례가 발생하여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불명확한 신분으로 인해 생포된 북한 군인이 포로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인도적 대우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생포된 파병 북한군 신병 처리에 대한 논란이 국제적으로 확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러시아는 여전히 파병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있어 불분명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3. 부실한 대비
현대전에서는 첨단 무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만, 북한군은 최신 군사 기술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이나 장비 지원 없이 전장에 투입되었다. 애초 훈련 경험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북한군이지만, 드론, 정밀 유도 무기 등 근래 등장한 현대전 핵심 무기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전략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장에서 촬영된 다수의 영상에서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살상용 드론이 등장했을 때 멍하니 있거나 우왕좌왕하며 도망다니다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북한군은 한동안 별다른 대응책 없이 전장으로 계속 내몰렸고,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적응하며 대처해야 했다.
4. 강제된 극단적 명령
북한 당국은 파병된 군인들에게 생존 가능성을 보장하기보다 극단적인 지시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투 중 투항하거나 후퇴하는 군인은 즉결 처형한다는 지침이 내려졌으며, 심지어 위급 상황에서는 항복하지 말고 자폭하라는 잔혹한 명령까지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북한 군인들은 전장에서 인간이 아닌, 필요에 따라 사용된 뒤 가차 없이 버려지는 일회용 소모품처럼 취급되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 국제인권규범에는 전쟁 등 공공비상사태에서도 ‘훼손이 허용되지 않는 권리(non-derogable rights)’가 명시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생명권이 포함된다. 국가는 이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군인 역시 권리를 향유하는 주체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직접 침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5.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 정보
우크라이나 당국에 생포된 북한 병사의 신원이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인터뷰 내용 공개가 초래할 위험성에 대해 당사자가 충분히 인지했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은 SNS를 통해 이들의 존재와 조사 내용을 낱낱이 공개했다. 국내외 언론도 전쟁의 참상을 알린다는 명목 아래 개인 정보에 해당하는 얼굴, 목소리, 나이, 출신,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제3국 체류 희망 여부 등 민감한 정보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가령, 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또는 일단 러시아로 송환되어 다시 본국인 북한으로 보내질 경우) 그간의 행적에 따라 고문이나 처형 등 잔혹하거나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인 대우에 마주할 수도 있다. 신변에 관한 잠재적 리스크가 모두 해소될 때까지 철저히 비공개로 부쳐져야 할 내용까지도 섣불리 공개한 것은 이들이 마주하게 될 인권 위기를 섬세하게 고려하지 못한 부적절한 처사임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연좌제가 적용되는 억압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두 병사의 가족이 2차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기에 더해, 전사한 북한 병사의 유족을 추정할 수 있는 정보(유족의 개인 정보에 해당)도 사실상 필터링 없이 전 세계에 공개되어 유포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잦아낼 뿐이다.

2024년 6월, 북한 평양에서 만나 미소를 짓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절실한 책임과 반성, 그리고 대책 마련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인류가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참혹한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쟁에 강제로 동원된 북한 군인의 인권 문제는 단순한 군사적 분쟁의 부수적 피해로 간주하고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참전국인 북한뿐만 아니라 언론을 포함하여 국제사회 전체가 주목하고 반성해야 할 문제다.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유형의 인권 침해 사례가 수없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로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양국 지도자의 야욕으로 인해 목적도 모른 채 먼 타국의 전장에서 오늘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들이 겪는 인권 침해에 대해 단순히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유사한 참상이 반복되거나 새로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제적 관심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